어쩌면 우연이, 어쩌면 필연이 된 선택의 기록 (1)

지금의 나는 그때의 선택들을 후회 없이 증명하는 중

by 새로이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결정의 순간'을 맞닥뜨린다.


어떤 때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우리의 선택 하나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는 전형적인 ISTJ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수십 번 계획을 고치며, 끝없이 점검하고 준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오히려 가볍고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곤 한다.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문득 그때의 선택들을 되짚어보고 싶어졌다.


만약 그때 조금 더 신중하게 고민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수학이 좋았던 문과생

사실상 부모님의 대리 선택으로 흘러갔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내린 중요한 결정은 고등학교 때가 아니었나 싶다.


2학년으로 올라가며 문과와 이과 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그저 친한 친구들을 따라 별생각 없이 문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수학을 좋아하는 문과생’이 되었다.


여고생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한 명씩 품는 선생님도 당연히 수학 선생님이었고, 쉬는 시간이면 언제나 수학 문제집을 들고 교무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심지어 수학 학원에서 이과반 수업을 들었을 정도였는데, 학원 선생님들은 수능 날까지도 내가 이과생인 줄 알았다.


아마 그때 이과를 선택했다면 전공도, 첫 직장도, 그리고 그 이후의 커리어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숫자에 빠져 살던 그 학생이 지금은 단어를 헤아리며 ‘글로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재미있지 않은가.



수능 공부, 다시 하고 싶지 않아!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든 두 번째 중요한 순간은 대학 입시 때였다.


결국 나의 문과 감성을 확실히 키워준 건 대학 전공이었다. 하지만 오해마시라. 평생 책방집 딸로 자라며 어릴 때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나름 많은 책을 읽었기에 문과 마인드는 원래 탑재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만족스럽지 않은 수능 점수를 받았다. 게다가 입시 전쟁에서 1지망과 2지망 모두 눈치 게임에 실패하면서 3지망의 합격증만 받게 되었는데, 여기까지 밀릴 줄 몰랐던 지라 사실 3지망은 입시 선생님이 대학 타이틀만 맞춰 고른 그대로 넣었었다.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렇게 불어불문학과에 들어갔다.

가족도, 학교도 내가 재수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더이상 수능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렇게 말할 만큼 후회 없이 공부했느냐 하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다만 그때는 다시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었던 것 같다.


불어불문학과는 단순히 언어만 배우는 곳이 아니다. 프랑스의 문학과 문화까지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이성적 사유와 예술적 표현, 인간 중심의 탐구로 요약할 수 있는 프랑스의 문학,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생각과 세련된 표현을 추구하는 프랑스 문화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요즘도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인문대생이라면 취업을 위해 상경계열 복수전공은 거의 필수였다. 나 역시 경영학을 함께 공부했는데, 언어와 감성의 뇌를 쓰다가 논리와 전략의 뇌를 켜는 전환이 새로웠고, 그 차이가 꽤 즐거웠다. 특히 이들과 그룹 과제를 할 때면, 사고의 폭과 초점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고 자주 놀라곤 했다.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남겨두어야 할까?

나의 커리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선택은 바로, 와인을 공부한 것이다.


첫 경험은 전공이 아닌 1학년 때 교양으로 들었던 불어교육과의 프랑스 문화 관련 수업에서였다. 아주 간단한 교양적 지식과 함께 마지막 수업에서는 와인을 직접 맛볼 수 있었는데, '맛있는 술'이라는 세계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워크캠프를 통해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지내고, 생테티엔(Saint-Étienne)에서 어학 연수를 하며 와인의 매력에 완전히 빠졌다. 와인을 향한 마음은 점점 진지해졌고, WSET(영국 본원 국제 와인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세계를 내 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와인도 술은 술인 지라, 그리고 당시에는 와인이 지금처럼 대중적이지도 않았기에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고집쟁이 아버지를 쏙 빼닮다 못해 청출어람의 끝을 보여주는 막내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와인 업계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시장 규모가 작고 열악하며, 다소 폐쇄적인 데다 성장 가능성에도 한계가 있다.


이 업계에서 일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일반인 대상으로 하는 시음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저도 한때 와인 업계에서 일했는데, 일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이쪽 길이 오래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다른 일을 선택했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만 남겨두려 합니다.”


지금도 종종 이 이야기를 곱씹어보곤 한다.

만약 와인을 단순히 취미로만 즐기고, 더 안정적이고 조건이 좋은 일을 선택한다면 어떨까?


나에게 있어 와인은 가장 좋아하는 일이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사실상 유일한) 취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못다한 추억 여행은 다음 편에 계속...



#마흔살 #인생전환 #자기계발 #갭이어

작가의 이전글마흔 살, 다시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