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연이, 어쩌면 필연이 된 선택의 기록 (2)

지금의 나는, 사랑이 남긴 나를 살아내는 중

by 새로이

나는 곁을 쉽게 내어주는 편이 아니다.


원래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필요 이상의 친절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주 부담스럽게 느낀다.


그렇기에 나는 좁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한다. 딱 이 정도가 좋다.


이런 사람이 연애를 한다면 또 얼마나 신중하겠냔 말이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아마 너였을 거야.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고작 400일 남짓, 하지만 어릴 때 한 사랑이라 그런가 가장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대학 1년 후배였지만, 재수를 했기에 나이가 같았다. 자주 함께 어울리다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고, 그렇게 핑크빛 대학 생활을 조금 누리다가 그는 군대를 갔다. 그리고 그가 이등병 계급장을 떼어낼 무렵,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야 따지자고 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냥 헤어질 때가 되어서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그냥 때가 된 것뿐이라고.


한 학년 정원이 40명 남짓인 이 작은 세계에서, 더군다나 나름 활동을 열심히 했던 CC가 깨졌으니, 후폭풍은 꽤 컸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싱크로율 80%의 생활 반경이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래도 깔끔(?)하게 헤어졌던 지라 그 이후로도 어색하지 않게 지냈다. 서로의 새로운 연애를 응원하기도 하고, 가끔 둘이서만 만나기도 했다.


그가 몇 번 다시 만나자고 말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선뜻 그러질 못했다. 집안의 장손으로서 그가 지닌 의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결혼이 그리 급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더더욱 큰 결심이 필요한 나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희망 고문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결혼 소식을 전해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오랜 인연에 안녕을 고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보통의 인생 스케쥴에 맞춰 결혼했다면, 집안도 조건도 아닌 오롯이 사람 그 자체만 봤을 때, 나는 아마 그와 결혼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내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겠지.



힘든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지금 나는 연애를 쉬고 있다.

벌써 8년째다.

아마도 마지막 연애가 너무 힘들었기에,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다.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만난 그는 나보다 띠동갑 이상 나이가 많았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고, 이탈리아 식재료 수입 관련 일을 오래 하고 있었던 지라 우리는 공통된 관심사를 통해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으른의 연애답게, 어느새 우리는 자연스레 깊은 관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아픔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과거의 상처를 건강하게 치유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신만의 고통 속으로 자꾸만 매몰되어 갔다. 일이 점점 풀리지 않으면서 더욱 심해졌는데, 그의 일상은 술로 채워졌다.


처음에는 내가 그를 수렁에서 구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주 큰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아무리 팔을 길게 뻗어도 결코 그에게 닿지 못했다.

결국 나 역시 지쳐갔다.


우리의 시작이 그랬듯, 끝도 조용히 흘러갔다.

그는 툭하면 잠수를 탔고, 언제부턴가 나는 안달 내지도 걱정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가 내 인생에서 서서히,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진 것이다.


1년 남짓한 그 연애는 나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지치게 했다.


누군가 말했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진짜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외로움이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하는 연애가 진짜 성숙한 관계라는 것이다.


나는 기다린다.

언젠가 다시, 내 연애 세포가 조용히 꿈틀거릴 그날을.



#연애에세이 #이별후회복 #자기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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