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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룹LOOP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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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안 Nov 10. 2022

룹(LOOP)

#6

모를 일이었다. 작품을 만들어 가는 중에 티켓이 모자라거나 또 곁들일 소재가 생겨날 수도 있었기에 나는 당근 마켓에 혹시나 싶어 다시 ‘영화’라고 검색을 시도해 봤다. 두 장에 9천 원. 지금 상영하는 영화 티켓들만 계속 넘기던 중에 저번에 산 것과 비슷한 느낌의 티켓 더미가 담겨 있는 틴 케이스가 있었다. 설마 같은 판매자? 아닐 거야. 확인해 보니 거래할 동네도, 이름도, 판매한 상품의 기록도 달랐다. 판매한 상품이라고 해 봤자 고작 나눔 2개였다. 판매자에게 채팅을 걸어 보았다. 몇 번의 조회는 있었지만 운이 좋게도 대기자가 없었고 나는 바로 거래할 수 있었다.

  효창공원 앞 3번 출구는 탁 트여 있었다. 주변의 복잡한 사거리들과는 다르게 조금 한산한 느낌도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키 큰 노인에게 시선이 갔다. 그의 차림은 다른 노인들과 다르게 밤색 중절모에 베이지색 계열의 말쑥한 양복 차림이었다. 요새 어르신들은 패션 감각도 남다르구나. 나중에 혹시 소재로 쓰일까 싶어 소리가 안 나게 살짝 어르신의 모습을 폰으로 찍었다.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베이지색 셋업 안에 연한 블루의 셔츠를 매치했다. 땀에 전 매쉬한 등산복 소재의 옷을 입고 구부정한 허리로 팔자걸음을 걸으며 큰 소리로 얘기하는 일반적인 노인들과는 좀 달라 보였다. 어르신의 손에 시선을 옮겼을 때 그의 손에 들고 있는 틴 케이스가 보였다. 패션 감각이 좋은 어르신이 판매자였다니! 이따가 거래 끝나면 옷을 정말 잘 입으셨다고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냐고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어르신에게 다가가 물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익숙하면서도 달큼한 냄새가 훅 끼쳤다.
  “혹시 당근 마켓 영화 티켓 판매자 맞으신가요?” 노인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잠시만 기다려 보겠어요? 하더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슬쩍 통화 내용을 들으니 누군가에게 와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 전화를 끊자 엘리베이터 반대편으로부터 소년이 나타났다. 처음 티켓을 샀던 그 바가지 머리의 소년이었다. “할아버지, 저 누나 맞아요” 어떻게 된 일인가. 왜 쟤가 여기에 나타난 거지? 분명 다른 판매자였고 처음 티켓을 샀던 동네와는 다른 곳이었다. 주춤거리며 발걸음을 뒤로 빼는 나를 향해 노인은 “아가씨, 미안해요, 입장권 좀 돌려줘요. 도통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가 들리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나를 작정하고 완전히 속인 것인가? 영화 티켓을 돌려받으려고? 내가 낚인 것인가? 그래도 오해를 할 여지가 있을 수 있으니 확인차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들고 계신 틴 케이스 안에 영화 티켓은 없는 건가요?” 불쑥 소년이 끼어들었다. “누나, 원래 파는 게 아닌데 제가 모르고 그랬어요. 죄송해요, 티켓 좀 돌려주세요. 여기 돈도 있어요. 다시 돌려드릴게요.”
  효창공원까지 오는 길이 그리 수고스럽지는 않았다. 한 번의 환승이었고 환승하는 구간도 길지 않아 많이 걷지도 않았다. 출구로 나왔을 때 불어오는 바람도 선선했고 온도도 적당했다. 굳이 여기까지 시간을 내어 오기가 힘들 만큼 바쁜 하루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를 속인 것에 대한 분노와 이 사람들의 무례함이 뒤섞여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노인네가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나이가 저렇게 어린애가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이 사람들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저한테 사기 치셨네요. 당근 마켓에 신고할 거예요. 다신 이러한 일로 불러내지 마세요.” 자리를 뜨려고 하자 노인은 다짜고짜 거세게 내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놓으세요, 어르신, 경찰 부릅니다, 지금.” “아가씨, 자그마치 30년이 넘도록 모은 거예요, 부탁이니까 제발 돌려줘요” 오가던 사람들이 주위에 멈춰 서서 여기를 주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저 끝에 경의선 숲길 길목에 사람들이 많았다. 저 안으로 휩쓸려 사라지면 나를 찾지 못할 터였다.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때 도로 앞 신호가 바뀌는 게 보였다. 노인의 팔을 뿌리치고 무작정 횡단보도를 건너 숲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단화를 신고 오는 게 아니었다. 밑창이 평평한 신발을 신고 당근 거래를 하러 오는 게 아니었다. 발바닥이 얼얼하게 아파져 왔다. 얼마쯤 뛰었을까. 마포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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