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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룹LOOP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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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안 Nov 10. 2022

룹(LOOP)

#9

 바로 다가가서 내 필요를 설명하기가 그래서 일단 나는 그의 저녁 행동을 지켜볼 필요를 느꼈다. 저녁 7시가 넘어갔지만 주변의 네온사인 불빛과 맞물려 극장 앞은 대낮처럼 밝았다. 나는 단박에 그 노인을 찾았다. 큰 키에 거북목을 한 노인이 무대에서 마치 공연을 하고 있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노인은 극장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삐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그가 무슨 마임 연기를 펼치며 돈을 버는 것인 줄 알았다. 주위는 온통 조명들이었고 영화관 앞은 광장처럼 펼쳐져 있었기에 그런 미시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극장 광장 옆 골목길에서 오징어와 쥐포 굽는 냄새가 밤공기와 뒤섞여 녹진했다. 그 중간에 토스터 굽는 달짝지근한 마가린 냄새가 저녁 어스름을 타고 내 코를 자극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바로 극장으로 연결된 출구인데 노인은 지상의 극장 상가 광장 앞에서 서성거렸다. 모를 일이었다. 나조차도 이 저녁에 뭐 얻을 게 있다고 난데없는 일에 나섰는지 슬슬 지겨워졌다. 그는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는데 사람이 나타나면 뭔가 곧 액션을 취했다. 나는 극장과 맞물려 튀어나온 옆 건물 카페 2층 창가에서 그를 관찰했다.
  시간이 갈수록 노인의 행동은 선뜩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 혼자 오는 여자를 발견해 극장 상가 출입구 쪽으로 향해 가는 여자에게 달려가 뭐라고 말을 건네면 무시를 당하거나 몇 마디로 거절하는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점점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잘못 왔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었다. 이런 노인에게 내가 무슨 사연을 듣자고 왔다는 말인가, 자조 섞인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 맥 빠진 것은 어떤 여자가 바삐 뛰어와 극장 지하로 내려가려는데 노인은 거침없이 다가가 여자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자 뒤이어 따라온 남자가 노인을 향해 “할아버지, 곱게 늙어요!”라고 면박을 주는 소리가 카페까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점점 혐오감이 차올랐다. 성추행 같은 뉴스 기사들이 오버랩된 건 노인의 타깃이 대개 여성이었고, 혼자 영화를 보러 오는 여성이 대상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혼자서 영화를 보러 오는 여자들을 발견하기는 드물었다. 한 달 전에 공원에서 내 팔목을 붙잡던 우악스러운 손이 떠올라 소름마저 끼쳤다. 그때 바로 신고했어야 했는데⋯. 추잡한 짓거리를 보자니 내가 낯이 뜨거워졌다. 이런 인간에게 졸업 작품을 부탁하려고 나온 내가 한심해졌다.
  더 있을 필요가 없겠다고 일어서려는 찰나에 노인은 어떤 사내에게 다가갔다. 소리를 들을 수 없었으나 뭔가를 거절하는 모양새였다. 그 사내가 노인의 팔을 뿌리치자 입장권 크기의 종이 두 장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장면이 시야로 들어왔다. 무릎을 꿇은 노인이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그 종이를 주웠는데 아뿔싸, 영화 입장권이었다. 극장 앞 광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거절당한 그의 굽혀진 등에 어둠처럼 강한 외로움이 서성거렸다. 그는 생각대로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곧 영화가 상영될 시간인지 몰라도 어느 누구에게든 입장표를 들이밀며 막무가내로 뭐라고 말을 건넸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보였다. 마지막에는 어떤 청년이었는데 그 청년도 노인을 무시하고 지하에 있는 극장으로 내려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항시 거절당하는 노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종국에 그가 극장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는 밤새 서성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의 기억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모를지도 모른다는 억측마저 들었다. 이 극장은 오래전부터 개축을 거듭했으니까.
   잠이 오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연극을 보고 온 착각마저 들었다. 아니 사실 보고 온 연극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의문이었다. 주인공은 말쑥한 차림의 키가 큰 노인이며 손에는 티켓 두 장을 들고 서성인다. 노인의 상대역들은 전부 엑스트라이다. 엑스트라 1, 엑스트라 2. 짝을 지은 엑스트라들은 노인을 흘끔 보며 지나간다. 혹은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거지? 하는 표정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여자 엑스트라 1은 도망가기에 바쁘다. 또 혼자 영화를 보러 온 남자 엑스트라 2는 노인네가 곱게 늙을 것이지 쌍욕을 퍼붓는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엑스트라 여자 3은 노망났네, 를 재차 말하며 혀를 차며 지나간다. 등산복에 절은 엑스트라 남자 4는 노인을 힘으로 뿌리치며 땅에 침을 뱉는다. 카페에서 흘러나왔던 이름 모를 재즈 음악과 노인의 거절당하는 행동들이 겹쳐졌다.
  케이스 안에는 구겨진 입장권 수천 장이 널브러져 있다. 노인의 움켜쥔 손에서 거절당한 입장권들이었다. 몇십 년을 고스란히 거절당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가 손에 움켜쥐었던 티켓들이 지금 내 원룸 바닥을 뒤덮고 있다. 아니, 그가 한 번쯤은 손에 쥐었던 시간들이다. 갑자기 티켓에 적혀 있던 날짜들이 우르르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다. 삼십 년이란 시간은 내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내가 존재하기도 전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으로부터 노인은 극장 앞을 서성였다는 것인가! 3만 원에⋯ 그 시간들을 사 올 순 없었다. 3만 원에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었다. 노인을 만나고 온 뒤의 부채감은 결국 시간의 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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