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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주 Jun 30. 2023

동네 친구에 대하여

1. 내일모레 본가 동네 친구 H가 한국을 떠나 LA로 간다. 일하러 간다.

원래 미국에 가서 살 친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훅 현실로 다가오니 기분이 이상하다.

아예 가서 못 봐야 실감이 날 것 같다. 


나에게는 동네 친구들이 몇 명 있다. 

지난 반 년동안 백수 시기가 맞아떨어져서 친구 H네 집에서 자주 모여 놀았다. 별 일이 없어도 그 친구집에 모여서 놀았다. 친구 고모가 해주신 반찬에 밥을 같이 먹고 떡을 사 와서 나눠 먹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넷플릭스를 봤다. 셋이 있으면 평소에 못 보는 공포영화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릭요거트를 만들어가서 나눠먹었고 갑자기 염색을 했다. 그리고 친구집에 가면 꼭 커피를 내려줬다. 진짜 무슨 캡슐을 쓰는지 너무 고소해서 밖에서 사 먹는 커피보다 맛있었다. 


우리는 의미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이야기를 해대면서 이런 생활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취업에 대한 불안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취업 고민을 잊기 위해 만났던 것 같기도 하다. 같이 있을 때만큼은 취업에 대해 푸념해도 얘네들이 있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나와 같은 처지인 게 안심이 되면서도 우리 셋 다 얼른 어딘가에 취업되기를 바랐다. 


친구 S가 취업이 돼서 다음 주부터 첫 출근을 한다. 그리고 H도 취업에 성공했다. 얘는 미국에 가서 일한다는데 섭섭하거나 속상하지가 않다. 물론 이제 잘 못 보겠지만 나의 해방일지 미정이가 여름에 더운기운을 저장했다가 추울 때 써먹는 것처럼 친구 H와의 기억을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면 된다. 가서 잘 해낼걸 알기 때문에 걱정이 안 된다. 또 한 명의 동네친구를 보내줘야지. 


2.  대학 동기 J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보다 졸업하고 나서 더 친해졌다. 어쩌다 서로 직장 위치가 비슷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J가 이사 왔다. J는 자취방 동네 친구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동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친구가 산다는 사실은 나를 안전한 기분이 들게 한다. 만나지 않아도 연결된 느낌이다. 이 친구와 같은 동네에 지내면서 사람들이 왜 동네친구 동네친구 하는지 알게 됐다. 심심하면 같이 걸어서 밤에 심야영화를 보러 간다. 계란을 (그것도 깨질 수 있는 날 계란을) 비닐봉지에 담아 나눠준다. 근처 대학교를 산책한다. 현타가 오는 배달음식을 죄책감 없이 시켜 먹는다. 말하면 무슨 가게인지 어디 위치인지 바로 알아 듣는다. 둘이 통하는 게 많아졌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유를 느낀다....라고 쓰다가 너무 문장이 느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새벽에 천천히 걸어올 때, 서로의 친구를 부를 때, 죄책감 없이 배달음식을 세 번 연달아 시켜 먹을 때, 밤에 서로의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엘피플레이어를 옮길 때 (앰프가 없어서 못 들었다) 자유롭다고 느꼈다. 고마움도 느낀다. 내 일상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 죽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 


이번 여름이 지나가면 친구 J도 곧 본가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H와 다르게 J는 가면 너무너무 허전하고 속상할 예감이 든다. 둘 다 너무 사랑하는 친구인데 왜 느낌이 다른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H는 서운해할까? 


본가 동네는 가면 부모님도 계시고 좋아하는 가게, 아는 길, 익숙한 동네인데 자취방 동네 친구는 모르는 동네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얘네들을 통해 친구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가끔 진하게 느낀다. 나도 언젠가 다른 동네로 옮길 텐데 그때도 근처에 친구가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얘네들을 통해 소중함과 안정감을 느낀 만큼 그 친구들에게 존재만으로 안정감을 주는 친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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