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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주 Jun 30. 2023

백수(홈프로텍터)를 슬슬 관둬야 하는데

전셋집 연장/대학원 등록금/대학교 학자금대출이 나에게는 남아있다... 

백수로 지낸 지 꽉 채워 6개월이 지났다. 

뭘 했냐면... 거의 대부분 누워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집에 가서 눕고 싶다.'였는데 꿈을 이뤘다. 지겨울 정도로 누워있었다. 계속 누워있다 보니 집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다닐 땐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에 집에 오면 밤이었다. 첫 자취 로망을 이루려고 이것저것 사놨는데, 큰 창이 두 개라 좋아서 계약한 집이었는데 1년 동안 제대로 햇빛을 즐겨본 적도 없고 출근 준비할 때 머리 말리면서 떨어진 머리카락만 청소기로 겨우겨우 치우면서 지냈다. 방치했던 내 집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누워있는 것도 좋지만 슬슬 죄책감이 들었다. 방구조를 바꿨다. 전보다는 비효율적인 구조지만 침대 옆에 책선반을 두고 반대쪽엔 책상을 뒀다. 그 위에는 내가 아끼는 조명을 올려두고 장스탠드도 이쪽으로 가져왔다. 누워있는 걸 너무 좋아해서 누워서 불을 끄고 싶어서 스마트 전구도 구매했다. 과연 편리하다...


화장실 청소, 싱크대 청소까지 박박 해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당근으로 내다 팔고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안일을 더 많이 하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도 했다. 이걸로 취직을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쌀 씻고 밥 짓는 일이다. 퇴근하고 와서는 밥 챙겨 먹는 게 그렇게 귀찮아서 냉동 닭가슴살 소시지를 돌려먹고 급하게 운동 나갔다. 지금은 흰 쌀에 어떤 곡물을 섞을지 잠시 고민하고 쌀을 씻는다. 흑미는 그냥 같이 씻어서 취사버튼을 누르고 완두콩은 냉동보관이라 잠깐 녹였다가 넣어야 한다. 보리는 물에 불려야 한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됐다. 잡곡밥을 만들어먹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돈다. 기분이 좋다. 평화롭다고 느낀다. 


그래서 얼마 전에 콩나물 300g을 시켰다. 콩나물밥이 먹고 싶어졌다. 엄마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양념장을 만들었는데 그 맛이 안 난다. 냉동실에 최소 2-3인분은 남았는데 처치곤란이다. 엄마가 그냥 참기름이랑 간장 넣고 비벼먹으래서 그렇게 먹었더니 좀 먹을만하다. 얼른 냉동실에 있는 콩나물밥을 없애고 싶다. 


원하는 시간에 운동을 가고 책을 읽고 실컷 누워있으면서 즐기다 보니 실업급여 마지막 달이 다가왔다. 

점점 쫄려온다. 전셋집을 연장하려면 회사에 다니고 있어야 해서 얼마 전부터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면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이 집에서 지내는 생활을 지키려면 일을 해야 한다. 

진짜 딜레마다. 일을 하면 내 취향으로 꾸민 집을 즐기지 못하고 (주말에는 착실하게 본가에 간다) 일을 안 하면 이 집을 빼야 한다. 조급하다. 다들 조급할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서류탈락에 면접탈락이 계속되다 보니 자책하게 된다. 그럴 필요가 없는걸 충분히!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이 불안감을 없애는 방법은 계속해서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 보러 다니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최선이다. 나는 정말 백수가 체질인데 이제 백수 (aka. 홈프로텍터)를 관두고 싶다. 관두고 싶지 않다.  어쨌든 다가오는 7월에는 새벽에 일어나 출근준비하고 비 오면 회사 가기 싫어하고 이 집의 관리비를 꼬박꼬박 내고 집을 연장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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