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브이 누나의 편지

기족의 풍경, 내 동생에게

by 진주아지매

*

"작은누나! 작은누나!"

햇볕에 그을려 새까매진 얼굴로 숨가쁘게 달려온 건 일곱 살짜리 남동생


"철이가 딱지치기에 졌는데 딱지를 안 내놓잖아! 그래 놓고 짜식이 비겁하게 지 형을 데리고 왔어!"

"뭐? 형아 나이가 몇 살인데"

"아홉 살."


'난 열 살이니까 이길 수 있겠어’

계산 끝내자마자 벼락같이 동생과 같이 전투현장으로 달려갔지

그곳에 여전히 남아 딱지치기를 하고 있는 형제를 발견한 순간 고함부터 질렀어.


"얏! 니가 우리 동생 때렸냐?"

"아... 안 때렸다, 내가 언제 때렸다고 그래... "


비쩍 마르긴 했어도 남다른 신장을 가졌던 내 모습을 본 녀석들은 긴장했고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지.


‘승기를 잡은 순간 더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법이라고 박노식 아저씨가 그랬어’



"너 딱지 내놔! 네가 졌으면 깨끗하게 인정하라구 임마!"

"여기... 주면 되잖아... 이만큼... 맞지?"


동의를 구하는 철이가 내미는 딱지를 거만하게 받아들며 나를 향해 승리의 미소를 날리던 너.


그렇게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작은누나를 부르며 달려오던 어린 동생과

태권브이처럼 달려가 힘껏 싸워주던 세 살 터울의 어린 누나는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나이가 오십이 넘어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로 끝나는 동화였다면 좋았을 것을

**

"누나, 나 병에 걸렸다는데... 누나한테밖에 말할 데가 없더라."


후두둑 눈물이 떨어지는 네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용감한 누나일 수가 없었구나


누구냐고, 우리 동생 이렇게 만든 운명 여기 나오라고,

고래고래 고함 질러주는 대신 그저 같이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구나.


"림프절에 전이가 되어 버렸다네... "

울음 섞인 너의 목소리 앞에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기만 했구나.

하지만 동생아, 운명 앞에 쉽사리 항복하지는 말자

“내가 기운이 너무 없어 밥을 못 먹겠네, 작은 멸치하고 중간 멸치하고 섞어서 가져오면 발치에 두고 먹을란다”


하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어머니를 우리는 보지 않았니?


스무살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서 이유 모를 병에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무당이 되어야 산다는 용한 점장이 말보다는 자신을 믿고

끝까지 자식들과 함께 하는 삶을 지켜내신 어머니는


임종 순간까지 운명에 지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남겨주셨다는 걸 우리는 기억하자


***

그리고 기억해 주렴,


고통스러운 싸움의 전장에 들어섰지만 넌 혼자가 아니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침준비를 해놓고 출근하면서도, 괜찮아예- 말하는 너의 아내와


이십 년 다니던 직장을 잃고 귀향하고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너의 힘과


태권브이는 아니지만, 너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형과 누나들이 있다는 걸 말이야.


고통 속에 주어진 삶이지만 두 눈 부릅뜨고서 끝까지

세상의 시간을

우리, 살아내 보자.



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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