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로 생각해도 내 모친 박여사의 무릎 연골은 찢어진 것이 분명하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오래 고생했으니 얇을대로 얇아진 연골이 그럴만도 하지. 길에서 주저 앉아 한 걸음도 걷지 못했다가 동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받아 먹고나서 겨우 운신이 가능해졌다.
내 보기에는 인공관절수술을 해야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박 여사는 아픈 다리를 디딜 때마다 통증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수술하고 재활하는 동안 무지막지하게 아팠다는 지인들의 말에 질려 수술은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짐짓 모르는 척이다. 아직 수술할 때가 안 됐다는 동네 병원 의사의 말을 전하며 더 두고 보겠다고 우겼다.
그런 박 여사가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구루프를 말아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고 일은 나간다. 박 여사는 노인일자리사업의 수혜자, 얼마되지 않는 급여이지만 처음으로 돈을 벌어 우리의 간섭 없이 옷을 사입고 애들 용돈을 주면서 일흔 중반을 넘은 나이에 드디어 자식들로부터 독립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제적 자유가 가져다준 당당함을 지키기 위해 분골쇄신, 견마지로를 불사하려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픈 다리를 끌고 일터로 나가는 늙은 엄마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다정한 모녀 사이가 아니어도 말이다. 화를 가라앉히고, 몸이 그렇게 아플 땐 쓰지 않는 거라 말하면 못 들은 척, 택시를 부른다고 하면 그까짓 것 얼마 번다고 택시를 탄다니하며 손사래...... 내 심장 위에 큰 돌을 올려놓고 박 여사는 기어코 현관문을 나선다.
비 오는 아침, 우산까지 받치고 어찌 가려나, 밖에 나가 우리 없으면 좀 편히 걸을까 싶어 베란다 창으로 내려다 봤다. 더 못 걷네. 달팽이가 앞지르고 남을 속도다. 저렇게 천천히 걸어서 목적지에 언제 도착하지. 못돼먹은 딸이 잔소리할까봐 집에서는 참는 건가. 내가 믿을 만한 자식이어도 저리 고생을 사서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