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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Jul 05. 2023

박 여사, 나의 모친 2

행복이 가득한 집

떨어진 입맛이야 금방 붙었지만,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졌다. 숙제를 남기고 잠자리에  밤처럼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입가경으로 마가 뚱한 사람과 통증클리닉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는 만감이 교차했다. 자식이 있어도 노년에 마음 둘 곳 없는 박 여사의 처지가 안됐기도 하고, 남은 생을 모두 고 말 것처럼 퀭한 그녀의 두 눈이 터무니없이 약해 보여 업자득이라는 말로 나의 무신경을 두둔하려는 내가 무자비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나는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아닌가. 데면데면 돌아앉은 아픔들이 갈피를 못 잡고 밤은 무심히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사정 얘기를 물으니 나를 번거롭게 하기 싫어 그랬다며 으로도 신경 쓸 거 없다고 박 여사가 말했다. 박 여사는 부모로서 우리에게 해준 것이 없어 가는 길이라도 폐 끼치지 않겠다는 자신의 그 마음을 나름의 사랑이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사랑이 달갑지 않다. 그것은 박 여사의 외로움이 무관심으로 세월 건 나에게 던지는 항변이고 그 항변에 반응하자마자 익숙한 방식으로 또다시 나를 옴쭉달싹 못하게 할 허방다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피로 이어진 결속과, 일생 함께한 기억의 우물은 너무나 깊어서 가끔은 그 심연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간 쌓은 지혜 지뢰를 피해 전진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죽을 수도 있다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사람은 나이니 앞으로 병원은 나와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박 여사의 고혈압 정기검진이 있는 날 주치의에게 정형외과로 연결해 달라 부탁하기로 하고 검진 날짜를 앞당겨 예약했다.


박 여사가 고혈압 때문에 20 년 넘게 병원을 다녔지만 동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지하여 세상이 두려운 사람이 거대 병원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알아서 바코드를 찍어가며 일을 보는 것이 신기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손전화로 디지털 인형눈박기를 열심히 하길래 넘겨다 보니 어려운 퀴즈를 잘도 맞춘다. 지식이 없어도 센스가 900단이다. 럴 때 보면 자식들 어찌 그리 엉터리로 키웠을까 싶고, 우리 아버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면 잘 살았으려나 싶기도 하다.


의사를 만났다. 무릎 연골은 찢어졌고 2 주 동안 진통제 먹으 운동을 하라면서 퇴행성관절염은 아직 3기라서 수술이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2 주 후에도 통증이 그대로이면 그 때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다. 의사가 통증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박 여사와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걸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는 택시를 부르지 않고 떠듬떠듬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요즘 심청이 노릇을 하고 있다. 무엇을 먹든 서로 관여하지 않고 살 박 여사가 거동이 불편하고,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해서 때마다 끼니를 챙기게 됐다. 조금 번거로워도 내 마음이 편해졌다. 더불어 박 여사도 덜 힘들기를 바랐다. 이러구러 어떻게든 살아보자 생각하며,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고 있는 나에게 박 여사가 말했다.

"아무개는 지 손자 자랑을 그렇게 해. 서울대 가서 장학금 받았다고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그 얘기를 얼마나 하, 원. 어유, 난 세상 자랑할 게 없어. 자랑할 게 뭐가 있어."

초지일관......


애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박 여사의 촉수는 자신의 불행을 감지하는 데에 특화된 것임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젠 반응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야 나를 지키고 저 완전 별로인 나의 모친 박 여사가 덜 외로울 것 같다.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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