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월 4일
리스본과 포르투가 만나도록 포르투갈의 지도를 위아래로 접은 선을 따라 스페인 국경 가까이 다가가면 화강암 산 위에 만들어진 조그만한 마을 '몬산투'가 있다. 포르투갈에 대한 에세이를 읽다 사진을 보고 가봐야지 했던 곳이다. 가본적이 있다는 한인민박의 스탭은 하루면 충분히 둘러본다고 했지만 그렇게 급하게 다녀오기엔 가진 시간이 너무 많았고, 하룻밤 자는 것으로는 여유가 부족할 것 같아 두 밤 치의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몬산투에 가려면 Castelo branco라는 도시에 가서, 따로 버스 티켓을 끊어야 갈 수 있었다. 그마저도 바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 개찰구의 직원은 이곳에서 꼭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야한다고 몇 번씩이나 강조했다. 그가 말한 마을에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정류장이라고 하기에도 아쉬운 그곳은 정류장보다는 동네의 슈퍼로서의 정체성이 더 확실해보였다. 슈퍼 앞에는 폐쇄된 놀이동산에 있을 법한 녹슨 낡은 버스가 한 대 서있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노부부와 주택들의 주황색 지붕들과 햇빛 따위를 보면서 삼십분 정도를 기다리자 머리가 하얗게 새고 덩치가 큰 남자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정류장이 익숙한 듯한 걸음걸이와 슈퍼의 부부와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아 내가 탈 버스의 기사인 것 같아 짐을 챙겨 일어나려고 하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버스기사가 아니라는 건지 탈 시간이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 다시 가만히 앉아 이십분쯤 더 기다리자 그가 다시 나와 시동이 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버스에 시동을 걸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면서 버스에는 몇 명의 노인들이 탔다가, 내렸다. 이 주변의 사람들의 마을버스 쯤 되는 것 같았다. 버스기사는 지나가는 승용차들, 트럭들, 거리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젓던 그는 이미 없었다. 상냥한 버스 아저씨, 그 쯤 되는 것 같았다.
어느새 버스에는 나와, 상냥한 버스 아저씨와, 운전석과 가장 가까운 오른쪽 앞의 좌석에 앉아 버스기사를 향해 일본어와 비슷한 어감으로 쉼없이 말을 거는 한 할아버지만 남았다. 버스는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 돌이 깔린 마을의 광장에서 할아버지를 내려주었다. 좁은 마을의 골목길로 들어가자 양 옆의 건물들로 인해 내부가 어두워졌다. 금방 큰 길로 나오면서 어둠은 사라졌지만 할아버지의 냄새는 버스에 남았다. 아마 오랫동안 버스에 새겨진 냄새일 것이다.왠지 모를 어색함에 창밖만 보고 있는데, 오른쪽에 홀로 우뚝 솟아오른 산이 보였다. 산 중턱위로 희끗희끗하게 모여있는 집들이 보였다. '저곳에도 가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순간 버스는 방향을 틀었고, 대략 스무 번 쯤의 격한 커브를 오르고 나서 도착한 그 곳이 몬산투였다.
몬산투는 햇빛이 따듯한 마을이다. 햇빛 자체로도 따듯하지만, 햇빛이 비치우는 돌로 된 집과 벽과 풀이 아주 따듯한 색으로 물드는 마을이다. 햇빛은 돌과 풀을 보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의 보금자리도 차별없이 보듬었다. 하룻밤을 자고 마을의 끝으로 가는 좁은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자 마을의 뒷편이 나왔다. 그곳에는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는 듯한 조그만 텃밭들이 산세에 맞춰 뒤죽박죽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길은 돌에서 흙으로 바뀌었고 더 좁아졌다. 산의 경사를 따라 조금 걸어가자 텃밭 사이에 양철로 된 무언가가 있었다 .창고 같기도 했다. 창고를 지나치자 창고 안에서 염소의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바람이 불었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옅은 소리였다. 양철판 사이 어둠이 보이는 틈을 들여다보자 불쑥하고 염소의 눈이 나타났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다시 울음소리를 내었다. 염소의 눈을 그렇게 가까이서 쳐다본건 처음이었다. 그는 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애원하듯이 계속해서 울었다. 인간마저도 보듬는 햇빛은 염소를 비추지 못하였다. 양지에 있는 나는 그를 풀어주지 못했다. 풀어주지 못한 것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너무 강한 햇빛이 사고의 경계를 어지럽혔다.
풀을 풀색으로, 나무를 나무색으로, 돌을 돌색으로 물들이던 햇빛은 점차 노란색을 띠다가 수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주황색이 되었다. 풀도 나무도 돌도 주황색을 담아 내리쬐는 햇빛에 본연의 색을 내놓고 주황색에 굴복한 비슷한 계열의 색을 만들었고, 포르투갈의 주황색 지붕들만이 그대로의 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몇 년전 큰맘먹고 구매한 발목까지 올라오는 검정색 워커를 신고서 청소용 솔마냥 동네의 구석들을 생각없이 걸어다닌 후에 산 정상의 성터 근처에 걸터앉아 본 주황색 햇빛은 어딘지 폭력적으로까지 보였다. 산자락 마을을 단단한 신발을 신고 오르락내리락 한 반향인지 낮에 본 염소의 눈이 자꾸만 떠올라서인지 아무튼 그랬다. 보듬는 햇빛은 내리쬐는 햇빛이 되었다. 안개 하나 없는 날씨에 먼진지 수증기인지에 거칠게 산란된 주황색 햇빛의 입자들이 산 아래 평지를 뒤덮었다. '보듬다'라는 단어의 뜻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람이나 동물을 가슴에 붙도록 안다'란다. 그렇게 간단한 뜻이라니. 간단함은 폭력성을 안고있다. 풀과 나무와 돌을 차별없이 주황색으로 물들이는것은 프랑스 아이건 한국 아이건 미국 아이건 상관없이 기본부터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본연과 개성의 유무가 거대한 흐름 아래 평등해지는 것은 자유의 구속이며 곧 폭력이다. 곧이어 다시 그 폭력마저 절실할 염소가 다시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