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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석 Feb 22. 2023

'미'에 신경쓰지 않음이 미가 되는 (1)

2022.9.13

적지 않은 수만큼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오르내렸지만 이리저리 긁힌 자국이 있는 조그만 비행기 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광경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달 동안의 제주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언제나처럼 창가 좌석에서 내려다보는 한국의 지상도 처음처럼 재밌다.


건축학과에 입학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두 가지이다. '건축이 무엇이냐' 와 '한국의 미가 무엇이냐'다. 사실 그 두 질문은 남이 나에게 물었던 횟수보다 스스로 물었던 적이 훨씬 많다. 그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아마 그 두 질문에 뚜렷하고 명백한 답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건축가(미래)로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이기에 반복해서 스스로 묻지만 언제쯤 명백하게 대답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아마 이 분야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받지 않을까?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반복해서 물었기 때문인지 뇌에 딱지 비슷한 것이 생겼는지, 계속해서 질문들에 답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혹은 건물을 보다가 혹은 책을 보다가도 두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가 언뜻언뜻 보일 때가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길을 걸으며 보는 모습과 다르다. 길을 걸으며 건물을 보면 옥상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너머의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과 대로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산의 모양새와 물줄기도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단편적인 모습의 집합을 통해 도시나 자연의 모습을 추측한다. 조금 더 노력을 기해 길 위애서 보통 사람들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건물을 짓는 사람이 그렇다.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은 지도를 통해 주변 길이나 건물들의 짜임새를 본다. 또한 주변의 지하철역이나 공원,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도 본다. 건축가가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갖는다면, 건물을 직접 쌓아올리는 사람들은 더 세분화된 시각을 갖는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무엇이 들어가고, 외장재와 구조체 사이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콘크리트에 어떤 것들이 섞이는지의 모습을 본다. 비행기에서의 시야는 그들보다 더 원초적이다. 그것은 그림을 보는 시야와 비슷하다. 산등성이와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그림, 시골 마을의 느슨한 지붕들과 일자로 나열된 비닐하우스들이 평평하고 비옥한 곳에 자리 잡은 그림, 도시의 공원과 지붕들, 골목길과 대로가 만들어내는 그림을 짧은 순간동안 감상하고 지나간다. 나는 그렇게 비행기를 탈 때마다 몽골, 러시아, 핀란드, 중동, 포르투갈, 프랑스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한국의 그림들을 본다. 


넓은 시야로 보면 사소한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잔뜩 녹슨 마감재나 들린 보도블럭 같은 것들 말이다. 한국사람들이 뽑은 '한국의 정경을 망치는 요인' 중 하나인 옥상의 녹색 방수 페인트도 그렇게 흉해보이진 않는다. 제주에서 서울로 오는 이번 여정에서 그림을 만드는 요소들을 전부 적어보았다. 


   1. 시골에서

- 형태  

아무렇게나 생긴 산, 어떤 것은 삐죽삐죽하고 어떤 것은 동글동글하다

산 사이로 뱀처럼 구불거리는 굵고 가는 물줄기들

평지를 따라 낸 도로, 물줄기와 나란히 생긴 도로, 숲의 경사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낸 도로

몇 개씩, 혹은 몇십개씩 묶음지어 나열된 비닐하우스

가장 평평한 곳을 논과 밭에게 넘겨주고 산자락과 구릉에 자리잡은 집들

산의 경사과 조화롭게 조성된 골프장 (환경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 색

파랗고 붉은 양철 지붕

옥상의 녹색 방수페인트

채석을 위해 숲의 중간중간을 파내 드러난 흙의 색

수종에 따라 다른 진하고 연한 산의 녹색


몇 년 전 리스본에 도착하기 직전 비행기가 리스본의 남쪽 절벽을 중심으로 크게 반시계의 원을 그리면서 보았던 풍경이 떠오른다. 자연의 형태가 이전에 있고, 그 위에 맞추어 놓여진 논밭과 건물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  파리나 바르셀로나의 철저히 계획된 도형의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그림이다. 직선에 맞추어 요소가 끼어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과 점을 이은 선들이 모여 곡선을 만들고, 면과 면이 모여 곡면을 만드는 자유로운 형태의 그림이다. 각각의 요소를 산과 바다 등의 자연이 연결한다. 이윽고 시골을 지나 도시의 모습이 펼쳐진다.

   


2. 도시에서 

- 형태

해를 향하는 해바라기의 군체처럼 남쪽을 향하는 아파트들의 군체

아파트들이 없는 곳을 메운 듯한 초록색 방수페인트의 옥상과 빨간색 지붕들

그 사이 묵직하게 자리잡은 축구장이나 커다란 잔디밭

하지만 일관되지 않은 수많은 건물들의 풍경과 정돈된 커다란 운동장과 공원은 어우러지지 않는다. 너무 정돈된 그 모습은 오히려 건물들의 풍경에 일조한다.

산의 오르내림을 건물들의 옥상이 만드는 곡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길고 넓게 뻗은 강, 그리고 철도가 만드는 길다란 곡선

산세를 따르지 않는 도로가 많이 보인다.

작은 건물과 골프장들도 마찬가지로 산의 모습을 굳이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산과 물이 만들어낸 풍경 위에 건물들의 홍수가 덮친 모습

서울에서 아무것도 없는 곳은 한강밖에 보이지 않는다.

   

- 색

무채색의 아파트의 비중이 과도해 색이 다채롭지 못하다.



도심을 벗어난 곳의 아름다움은 산에서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산이 가진 아름다움은 마테호른이 가진 것과도 다르고, 후지산이 가진 것과도 다르다. 그것은 이름이 없는 산이 모여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각각의 이름이 물론 있겠지만, 하나의 산으로는 우리나라의 산이 가진 아름다움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여러개의 산이 만들어내는 연속적인 선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그 분포와 익명의 산세가 만들어내는 골격과, 그 위를 겸손하고 사뿐하게 덮은 인공물의 마무리가 만드는 채도가 옅은 아름다움이다. 


도심으로 들어설수록 인공물의 비중은 늘어난다. 그에 따라 채도와 대비는 짙어진다. 초록색(옥상)과 붉은색(지붕)이 많아지는 것과 동시에 녹색의 공원과 운동장 또한 그것에 일조한다. 산의 초록색은 그 규모와 불균일함이 오히려 초점을 흐트리지만, 공원과 운동장의 균일하고 인공적인 녹색은 오히려 눈길을 집중시킨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은 길고 넓은 강이 유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또한 채도와 대비를 높이는데 일조한다. 산이나 물이 밀도를 효율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는 완충이 필요하다. 산과 강의 중심에서부터 가까울수록 인공물의 밀도가 낮고, 멀어질수록 짙어지는 그라데이션이 있어야만 조화로운 강약이 생겨난다. 하지만 서울에서 건물은 오히려 강과 뭍의 경계에 집중되고,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산의 경사와 상관없이 빈 공간을 채운다. 그 결과로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비어있는 산과 강은 도시의 채도와 대비와 밀도를 증가시키는데에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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