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해 내가 나를 독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그 힘을 가진 독재자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진 자들을 존경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자신감이 곧 나를 독재하는 힘이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독재할 수 있기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시선을 받던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기가 있다는 것은 곧 내가 나의 주인이자 소유자임을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가진 지배욕(권력), 소유욕(용기)을 얼마만큼 끌어올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권력자와 권력에 무릎 꿇는 자가 있는 것이고 소유하는 자와 소유당하는 자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연인’ 관계나 ‘부부’ 관계에서 나타나는데 일부 그것을 자존감 차이라고 하지만 자존감이란 마음 자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 말이 곧 자신의 욕구가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인지하지 못했기에 사용하는 법도 모른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나 사용법을 잘 알아야 나라는 소유권을 빼앗기지 않고 나를 독재적으로 활용하여 원하는 삶을 구축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독재적으로 굴어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란 말이 아니다.
적어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자기가 가진 욕구를 주변에 알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족을 선택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채 그저 태어난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도 자식을 선택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낳느냐 낳지 않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 어떤 성향에 어떻게 생긴 자녀를 바라던원하는 대로 태어나진 않으니까.
그러나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에서 이미 소유권은 부모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부모의 기준과 뜻에 따라 모든 생활 습관과 가치관이 주입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경우가 더 많고 그 기준을 벗어나고자 할 경우, 많은 risk를 감수해야 한다.
나는 독재자 할머니와 그보다 더 독재적인 아버지와 살았다.
자신에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로 방출하여 강압적으로 옳던, 옳지 않던, 상관없이 맞추려 했다.
초등학생 때 원래 학교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와 방 청소와 설거지 빨래를 돌려놓고 연탄불을 갈아 물을 받아두면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밥을 먹고 빨래가 다 돌아가면 빨래를 마당에 걸어 말려두고 할머니가 장사하는 곳에 가야 했다.
그런데 한날은 너무 잠이 와서 빨래를 돌려놓고 잠시 잠이 들어버렸고 눈을 떠보니 한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일어나 밥을 먹고 할머니에게 가려고 김치 하나만 꺼내서 물에 밥을 말아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소변이 급하셨는지 소변을 보고 집으로 오셨다. (마당에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밥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상황을 묻지도 않고 신발을 벗어던지듯 벗고 들어와 내 머리채를 잡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숟가락이 손에 들려있었고 입에는 방금 넣은 밥알을 삼키지도 못한 채 할머니 손에서 온몸이 흔들려가며 머리를 뜯겨야 했다.
사랑 한번 받아보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소유였기에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며 자라야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뿐만 아니라 큰오빠도 독재자 아버지로 인해 기 한번 펴보지 못했고 매일 욕먹으며 무시하는 수준을 떠나 인격 모독까지 해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숨죽인 채 대꾸는커녕 의사도 한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 집에서의 탈출이었다.
그 선택은 계획적이진 않았다.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무수히 많이 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외출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과 지금이 아니면 더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거라는 말이 내 안에서 소리치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아버지가 외출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서는 순간 창문으로 아버지가 어디쯤 갔는지 확인하고 주저 없이 가방에 옷 하나 챙겨 집을 나섰다.
어쩌면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나의 의지대로 오로지 내 선택으로 그 누구에게도 결정권을 내어주지 않은 나의 결정이었고 선택이었으니까.
갓 20살이 고작 3천 원을 들고 집을 나섰으니 얼마나 무모한가.
그럼에도 오죽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기숙사 생활하며 공장과 학교를 같이 다니는 상업고등학교에서 일해 본 경력으로 무작정 벼룩시장을 보고 3천 원으로 갈 수 있는 김해 어묵 공장에서 면접을 보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장사도 해봤던 터라 일 잘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고 그 공장에서도 오래 일한 사람들보다 빠른 속도로 익혔다.
손도 빨라 평균 할당량 기준치 이상을 해냈지만 집을 도망쳐 나왔다고 바로 내가 내 주인이 될 순 없었기 때문에 기죽어 살며 휘둘리고 살았던 습관이 온몸에 배어 조금이라도 흉보듯 말하면 풀이 죽어 눈물을 글썽이거나 축 처져 있는 내 모습을 쉽게 삐지고 꿍해 있는다며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싫어했다.
나는 또 그것이 더 서러워 그곳에 오래 있지 못했고 집에서도 내 이름 한번 제대로 불려본 적 없이 살다 학교에서는 전교생 따돌림을 당하며 친구도 제대로 사귀어본 적 없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쉬울 리 없었으니, 동료들과도 친해지는 법을 몰랐던 나는 직장을 많이도 옮겨 다녔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하물며 교회에서조차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는데 누구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눠 봤겠나.
그렇게 나는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음에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떠도는 방랑자처럼 집을 뛰쳐나와서도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삶을 오래 살았다.
지금의 내 이름으로 바꾸기 전까진.
현재 내 이름은 개명한 이름이고 이렇게 개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날이 내가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노라 그래서 내가 내 이름의 주인으로 살겠노라 다짐했던 두 번째 결심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번째 결심 덕분에 조금씩 내가 나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씩 내가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들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로소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독재적으로 내 재능을 마음껏 활용하며 내가 벌어들인 돈을 오로지 내가 소유하고 나누며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감수해야 했던 가장 큰 risk는 고아가 되는 것이었고, 나는 그 risk를 통해 심장에 칼이 꽂힐 정도의 무자비한 오해와 비난을 견뎌야 했지만 risk를 감수한 덕분에 나는 나의 주인이 되었다.
그래서 난, 아파도 서러워도 혼자 감당하고 기댈 곳 하나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아온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본인 스스로 이끄는 주인이 되어 독재적으로 자신을 활용하며 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risk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아니, 질문을 바꿔 감수해서라도 당신의 삶에 주인이 되고 싶은가?
이 두 질문 중 어떤 것에 답을 내더라도 답을 낼 수 있다면 독재자로 살고자 하는 사람과 독재자에게 의존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 중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risk라도 감수할 각오가 선다면 당신은 당신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동안 겪을 고통이 오히려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과 자원이 되어줄 것이라 감히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외로움이나 고통이 두려워 타인이 나를 소유하도록 독재자에게 의존하고자 결정했다면 자신의 결정을 남 탓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며, 애써 자신이 나약한 탓에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은 당신의 몫이고 어떤 상황이라도 선택은 할 수 있는 거니까.
갓 20살이었던 내가 도망치기를 선택했던 것처럼.
【마법처럼 힘이 되는 한 소절】
잊지 마. 너라서 가능하고 너니까 할 수 있고 너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라서 좋아하고 너니까 눈길이 가서 너와 있을 때만 심장이 뛰고 너만이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여야만" 가능한 것이 반드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