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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ul 여진 Apr 12. 2024

14. 자제력 그게 뭔데요?

음식 앞에서 매번 자제력을 잃는다.



사주에 식신이 많이 깔려 있다.

그 때문에 식탐에 무너지는 것일까.

아니면 어릴 적 환경의 영향일까.

둘 다 일 것 같다.



가난했다.

가난한 집이지만 굶기진 않았다.

그만큼 할머니가 어떻게든 밥을 해 먹이려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나라에서 지원해 줘서 초등학교 5학년 말부턴 급식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가난하다고는 하나 굶어 죽을 정도로 가난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위에서 어릴 적 환경의 영향 때문일까 하고 말한 이유는.

아들만 위하는 집안 분위기 때문이다.


10살 터울의 배 다른 큰 오빠와 2살 차이 나는 작은 오빠가 있었다.

작은 오빠가 더 많은 사랑을 독차지했고.

음식이든 옷이든 늘 오빠들이 최우선이었다.

그 덕에 여자지만 오빠들이 입던 옷을 물려 입어야 했고.

난닝구(러닝셔츠)마저 오빠들이 입다가 누렇게 바래진 것을 물려 입어서 신체검사 때 얼마나 놀림받았는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먹는 것도 나는 항상 뒷전이었다.

오빠들이 먹고 남으면 먹으라는데 남을 리 있나.

가스라이팅이 무서운 게 오빠들 없고 가족들 없는 시간에 몰래 먹었어도 될련만 나는 그마저도 두려워서 몰래 먹지도 않았다.

그래서 꽤나 부유했던 작은 아버지 댁에 방학 때마다 며칠 놀러 가곤 했는데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물어보고 마셨다.

냉장고를 열어 보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고, 너무 먹고 싶어 문을 열고선 "이거 먹어도 돼요?" "이 음료수 마셔도 돼요?" 항상 물어보고 먹었다.

하도 물으니 한 번은 작은 어머니가 "왜? 먹지 마라면 안 먹게"라고 장난치듯 말씀하셨는데 집에서 사랑도 대우도 못 받고 자란 나는 그런 장난에도 주눅이 들어 "네..."라고 대답했고 늘 그렇게 기죽어 있는 모습을 보며 친척 오빠들은 귄다구리 없다는 말을 볼 때마다 했던 것 같다.

(귄다구리는 전라도 사투리인데 사실 귄 없다는 말의 속 뜻은 아직도 천차만별로 해석들을 해서 정확한 뜻은 알 수 없다.)


중학교 교복도 22 사이즈 밖에 안 될 정도로 깡마른 내가 66 사이즈를 얻어 입어서 아빠 옷 걸쳐 입은 것 같았고, 내가 원하는 옷 한 번 입어보질 못해서 옷에 대한 갈망도 컸다.

옷과 음식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던 탓인지 나는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먹는 것과 입는 것에 돈을 많이 썼고, 여전히 그런 편이다.

그렇다고 비싼 옷을 사입은 것도 아니고 비싼 음식을 사 먹은 것도 아니지만 혼자 살면서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사고 싶은 옷을 살 수 있는 선에서 사고 먹고 원 없이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자주 체하고 위가 약해서 한꺼번에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이놈의 식탐이 눈앞에 음식을 보면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게 돼서 한도 초과로 인해 배앓이를 수시로 한다.

미련하고 미련해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참지 못하고 늦은 시간에도 먹던 탓에 살도 많이 쪘다.

지금은 먹는 양을 더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식탐으로 인해 후회할 짓을 한다.

어차피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먹는 것만 보면 군침이 돌고 자제력을 잃어버리니 내가 나에게 실망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젠 더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먹을 때 주문을 외우듯 "너는 양을 초과하면 아파진다는 걸 명심해라"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살찌는 거 상관없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막 먹고 싶다가도 살찐 내 모습을 보면 혐오스러워서 못 참겠고, 또 어차피 많이 들어가지도 않아서 막 퍼먹어 대지도 못한다.

그래서 어떨 때는 소식좌들처럼 입맛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치아 교정하고서 매달 철을 조여서 가장 아픈 시기에도 어떻게든 먹어댔던 탓에 남들은 치아 교정하면 살 빠진다는데 나에겐 전혀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라 '입맛' 없는 삶은 내 40 평생 살아보질 못 했다.


솔직히 마흔 기념 바디 프로필을 한 번 더 찍어보려고 계획했다가 살이 쪄서 찍지 못했는데 이제 한국에서도 만 나이로 세니 아직 마흔 전이라며 비겁한 변명을 내게 하고 있는 모양새도 영 꼴분견이다.

식욕을 억제해 준다는 약은 솔직히 먹기 싫다.

부작용 사례를 너무 많이 봤고 약도 잘 챙겨 먹는 성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파도 먹고 싶은 건 못 참고, 하루 6끼 먹어도 44 사이즈를 유지하며 예쁜 몸매를 자랑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식탐을 헐 값에 팔 수만 있다면 아니 공짜로 줄 수만 있다면 줘버리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밥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배가 부른 상태인데 냉장고 안에 있는 딸기라떼가 너무도 먹고 싶다.

어제 주문해 둔 거라 오래 놔두면 딸기나 흐물 해져서 맛없는데.

살이 쪄도 위는 딱히 늘지 않아서 식사 후 최소 2~3시간은 지나서 먹어야지 안 그럼 또 탈 나서 고생하니 입맛만 다시고 있다.

두 시간 다 되어 가니까 이 글을 빨리 마무리 짓고 그냥 먹어 치워야겠다.



오늘 왜 뚱딴지같은 식탐 이야길 하나 싶겠지만, 타로 메이저 카드 14번이 '절제'의 카드라서 그에 맞는 글을 찾다 처음엔 욕심과 관련해서 내려놓기 마음 비우기 등에 대해 쓰려했는데 식탐도 이기질 못하는 주제에 뭘 내려놓고 마음 수련하고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어 어느 정도 써 놨던 내용을 다 삭제하고 급히 유턴해서 식탐에 관한 이야기를 써봤다. (그  덕에 안 그래도 부족한 필력이 더 도드라지네)




【마법처럼 힘이 되는 한 소절】

새드엔딩의 결말이 되었다고 해서
그 속에 행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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