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 7주차 여영추 <가여운 것들>(2023)
<가여운 것들>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8번째 장편영화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인간의 본능에 대해 깊이 통찰하며 어딘가 뒤틀리고 차갑고 기묘한 연출방식으로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감독이다. 예시로 <킬링 디어>와 <더 랍스터>를 들 수 있다.
영화는 서사의 중심인물인 벨라가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의 시점 변화가 일어난다. 벨라가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벨라 주변의 두 남성 인물 고드윈과 맥스의 시점으로, 여행을 떠난 후에는 벨라의 시점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영화는 크게 5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리스본, 배, 알렉산드리아, 파리, 런던으로 벨라가 세상을 탐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후의 이동 경로에 따라 나뉜다. 즉, 벨라가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찾는 여정에 따라 챕터가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벨라의 몸은 자신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블레싱턴, 뇌는 만삭인 빅토리아의 몸과 분리되지 못한 태아의 뇌이다. 태아의 뇌와 성인 여성의 몸을 가진 벨라에게는 발달에 있어서 간극이 존재한다. 영화 초반의 벨라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거나 문장은커녕 단어 하나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즉, 인간의 영유아기 시절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벨라의 성장은 눈에 띄게 빠르다. 머리카락은 이틀에 2.5cm씩 자라고, 어휘력이나 문장의 완성도도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드윈은 벨라를 두고 ‘실험체’라고 강조한다. 실험체인 벨라를 연구하는 것은 고드윈과 맥스이다. 남성인 고드윈과 맥스는 여성인 벨라를 관찰한다. 그리고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남성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인 벨라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로라 멀비의 대표 저서인 <시각적 쾌락과 서사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인 ‘남성적 응시 male gaze’가 이 내용을 뒷받침한다. 멀비는 모든 서사 영화는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여성은 ‘성적 스펙터클’로서 존재했다. 남성은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주체이고 여성은 보여지는 대상이다. 남성은 관음자로서 여성을 몰래 바라보고 그들의 욕망에 의해 시각적으로 소비된다. 즉, 남성은 ‘시각적 계급’에서 여성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남성적 응시’는 촬영적으로도 나타난다. 란티모스는 총 3가지의 렌즈를 사용하였다. 광각 렌즈, 줌 렌즈, 그리고 포이트레이트 렌즈. 광각 렌즈는 기이한 연출을 할 때 사용하는 렌즈 중 하나이다. <가여운 것들>에서 사용된 광각 렌즈는 개중에서도 특이하다. 다른 영화에서는 최대 8mm의 광각 렌즈를 사용하지만 <가여운 것들>에서는 4mm의 초광각 렌즈를 사용하였다. 4mm의 초광각 렌즈를 35mm 카메라에 장착하면 피사체를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비네트 효과를 만든다. <가여운 것들>의 경우 렌즈로 만들어낸 비네트 효과는 현미경에 놓인 벨라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관객들이 남성의 시각인 고드윈과 맥스의 시선으로 벨라를 바라보게끔 만들며 관객들의 시선과 동일시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반응으로 나뉜다. 하나는 선정적인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한 인간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는 점이다. 나는 두 가지 반응 모두에 동의한다. 이 영화는 섹슈얼리티의 면에서 비판받아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동시에 인간의 주체성을 그리는 데에 영화로서 효과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비판받아야 할 점이다. 여성의 주체성은 페미니즘 담론에서 빠질 수 없다. 여성들이 주체적인 삶을 쟁취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많은 페미니스트 여성 영화 이론가들이 서사 영화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점들을 비판해 왔다. <가여운 것들>은 여성의 주체성을 섹스와 연결시킨다.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인 벨라는 매혹적이다. 영화의 대사를 통해 끊임없이 언급된다. 이러한 벨라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자신의 충동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행동이다. 이러한 충동성은 주로 성적 충동으로 발현된다. 이 대목에서 감독한 한 가지를 놓쳤다. 바로 월경이다. 임신 가능한 몸을 가진 벨라는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월경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다. 감독은 오로지 성관계에만 집중한다. 여성의 주체성은 성관계로만 다루어져선 안 된다. 이것은 명백히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의 해방이다. 이것을 과연 해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두 번째는 벨라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초반의 벨라는 쾌락만을 좇는다. 그러다 언제, 어디서 자신의 쾌락을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 차근차근히 배워 나간다. 즉, 세상에 점점 적응을 하고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다 빈곤층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 마주하게 된 세상의 어두운 이면에 벨라는 충격을 받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후 돈을 모두 잃게 된 벨라는 매음굴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식견을 넓히게 된다.
로라 멀비는 서사 영화에서 나타난 ‘남성적 응시 male gaze’에 대해 비판하였다. 남성 감독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계점들도 있었지만 란티모스 감독 나름대로 그 한계점들을 타파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벨라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감독이 놓친 부분과 남성 감독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 주인공을 그려낸 방식, 그리고 남성의 시각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계점들을 타파하려는 방식을 벨라와 여행을 함께 떠나며 따라가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