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not things,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

2025-1 6주차 여영추 <매드 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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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분노의 질주, 폭발하는 차량, 광기 어린 전사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주된 이미지는, 남성형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형적인 포스트아포칼립스 액션 영화의 프레임 아래에서, 전통적인 액션 영화의 문법을 전복하며, 여성 해방의 서사를 펼칩니다.


핵전쟁 이후, 물과 자원이 부족한 황무지에서 맥스는 어느 날, 임모탄 조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시타델’로 끌려갑니다. 그는 탈출 과정에서 임모탄 조의 부하였던 퓨리오사의 여정에 합류하게 됩니다.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의 아내로 억압되어 있던 다섯 명의 아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분노의 질주를 시작하고, 맥스와 퓨리오사, 그리고 이 여성들의 목적지는 퓨리오사의 고향 ‘녹색의 땅’입니다. 이들은 임모탄 조와 그의 군대를 무찌른 뒤 다시 시타델로 돌아가 새로운 세계를 세워갈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퓨리오사 캐릭터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 캐릭터가 단순히 전통적인 남성 히어로의 성별을 여성으로 전환하거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기대지 않고도 강인하고 입체적인 존재로서 서사를 이끌어낸다는 점입니다. 퓨리오사는 한쪽 팔이 의수인 장애를 지녔음에도 다른 남성 캐릭터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영웅 서사에서 남성 히어로는 구원자, 여성은 구원받아야 할 대상인 수동적 존재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의 아내들을 평등한 동료로 대하며 그들과 함께 싸우고 연대합니다. 이 관계는 구조와 피구조의 위계가 아닌, 동등한 주체들의 연대에 기반을 둡니다.


“We are not things.”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 임모탄 조의 아내들이 탈출 전 남긴 말이자, 영화가 담고 있는 핵심적인 페미니즘 메시지를 응축한 문장입니다. 임모탄 조의 아내들은 그의 소유물이자 번식 도구로, 수유와 생식 능력을 통제당합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생산 수단’으로 대상화되는 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극단적인 상징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임모탄 조에게서 벗어난 후 단순히 임모탄 조의 세상을 연명하기 위해 강요받던 출산이 아닌, 새로운 생명을 낳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으로도 그려집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아름다운 물건으로, 생산의 도구로 임모탄 조의 세상에 갇혀있던 이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무기를 들고 함께 맞서 싸우며, 마침내 자신들을 억압하던 임모탄 조를 해치웁니다. 감독은 이들이 누군가의 소유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신체의 자유와 정체성을 되찾고, 스스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주체성, 그리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연대의 힘을 지니는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퓨리오사와 맥스, 그리고 임모탄 조의 아내들은 녹색의 땅을 향해 질주합니다. 녹색의 땅은 퓨리오사의 고향이자 이상향으로, 황무지로 변해버린 세상과 달리, 자연과 조화롭게 살던 과거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향의 노년 여성 전사들—부발리니—과 재회하면서 그 땅이 이미 사라졌음을 알게 되고, 우리는 처음으로 퓨리오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섭니다. 이제 그녀 곁에는 녹색의 땅을 지키고 있던 노년의 부발리니 전사들도 함께 있습니다. 이들은 다시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씨앗과 그 씨앗을 발아시킬 수 있는 지혜와 역사를 지닌 여성들입니다. ‘녹색의 땅’은 이미 사라진 과거의 이상향이지만, 동시에 그들의 이상향을 새로운 세계에서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주는 공간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영화의 제목이 왜 ‘매드 맥스’인지 궁금해집니다. 1979년에 시작된 《매드 맥스》 시리즈는 1편부터 3편까지 모두 맥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역시 그의 세계관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사실상 영화를 이끌고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는 퓨리오사입니다. 맥스는 조력자이자 연대자, 지지자, 동맹자로서 기능하며, 이는 오늘날 새롭게 요구되는 남성 캐릭터입니다. 그는 퓨리오사의 리더십과 여성들의 주체성을 인정하며 함께 싸우는 연대자입니다. 또한 ‘Mad Max’의 ‘Mad’는 단순히 광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뜻하는데, 맥스는 퓨리오사와의 동행 과정에서 그녀가 다른 여성들을 이끄는 과정, 그리고 이들이 서로 연대하며 헤쳐나가는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회복합니다. 우리는 맥스가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퓨리오사에게 밝히는 장면을 통해, 그가 이 종말의 세상에서 하나의 자원으로서 기능하며 잃었던 인간성을 회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군중들 틈 사이로 멀어지는 맥스를 바라보며, 그가 또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퓨리오사와 함께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혹자는 이 미친 자동차 액션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만 바라보는 건 과도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억압받던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탈출하고, 맞서 싸우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나아가는 구조를 지닌 전형적인 여성 해방 서사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시각을 여실히 담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블록버스터 액션 ‘페미니즘’ 영화라는 소개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퓨리오사 역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이 칸 영화제 한 인터뷰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사람들은 약간 겁을 먹는 것 같아요 … 조지 밀러 감독은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복잡하고 흥미로운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그는 단지 진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놀라운 페미니즘 영화를 만들어낸 거예요.” — 칸국제영화제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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