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 8주차 여영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여성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규범과 구조를 전복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엄마와 딸 그리고 모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고착화된 이미지들을 탈피하도록 만듭니다.
이 작품은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엄마’라는 사회적 틀을 무시하는 수경과 그런 엄마로부터 방치되어 자라난 딸 이정의 갈등이 중심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엄마 수경의 차에 치인 주인공 이정으로 시작하여, 엄마는 차량 문제의 급발진을, 이정은 엄마의 고의를 주장하며 벌어지는 갈등 상황이 가장 큰 기틀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둘의 갈등에서 나아가, 사회 구조 안 엄마이자 딸로서 부여받는 선입견 안에 갇혀 있는 수경과 이정을 그려 나갑니다. 또한 수경과 이정의 강렬한 대립과 외부적 갈등이 눈에 보이지만 결국 엄마라는 틀보다 자신의 욕망을 갈망하며 살아가고픈 수경의 내적인 갈등과 그 관계 안에서 엄마를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며 괴로워하는 이정의 감정이 중요하게 제시됩니다.
수경은 이정이 요구하는(사실 이정 또한 사회로부터 요구받고 있으며 요구하게 된) 모녀관계 내의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수경은 이정에게 어떤 감정적 지원도 건네지 않으며, 살갑게 굴지도 않고 딸 이정의 졸업식 참여도 당연한 듯 까먹습니다. 사회구조에 편입된 딸로서 엄마라는 역할에게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받지 못한 이정은 그런 엄마를 원망하며 비틀린 자신을 비관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경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며, 연인인 종열과 사랑하는 데에 온 집중을 다합니다. 하지만 수경이 향했던 자신의 욕망으로의 길은 결국 수경이 거부했던 사회구조 속 정상성을 가진 엄마에 다시금 편입할 수밖에 없게끔 흘러갑니다. 종열은 결국 수경이 단순히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딸 보람의 엄마가 되길 원합니다. 또한 종열이 수경에게 원하는 ‘엄마’는 수경이 이정에게 되길 거부했던 그 '엄마'의 존재입니다. 결국 수경은 종열에게 부여받았던 엄마의 역할을 뜻하는 듯한 보람과 똑같은 모양과 색의 코트를 벗어던지고 속옷차림으로 길거리를 걸어 돌아옵니다.
영화의 중 후반부에는 참다못한 이정이 "엄마 그럼 나는? 엄마한테 쌓인 그거, 다 나한테 쏟아내면 나는 어떡해?"라고 묻자 수경은 답합니다. "그럼 너도 딸 낳아."
이 대사에서 고착화되고 비틀린 모성신화의 사회구조가 그대로 대물림되고 답습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가 발생시킨 가장 큰 피해자인 이정은, 직장 동료인 소희의 호의에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정과 비슷한 상황에서 벗어나 독립한 소희에게 이정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불편한 존재가 됩니다. 종열과 결혼하고자 했던 수경도, 소희에게 “나도 여기서 살까?”하고 물었던 이정도 외부의 애착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지만 결국 그들을 의존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속 두 여자인 수경과 이정은 ‘속옷’이라는 이렇게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을 공유하지만 그것은 서로의 의지가 아닙니다. 또한 그곳에 이정의 취향은 없고 어쩌면 이정이 수경에게 당했던 수많은 폭력을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 속옷은 수경과 이정 모두가 강요받고 있는 가족 내의 그들의 위치와 압박적인 사회적 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정은 ‘같은 속옷’에서 벗어납니다. 여성으로서 한 번도 자신의 제대로 된 사이즈를 알지 못했던 이정은 드디어 ‘자신만의’ 속옷을 구매하게 됩니다. 이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김세인 감독이 말했던 “한 모녀를 봉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두 여자가 독립하는 영화이길 바랐다”며 “그저 두 여자가 의존하던 서로에게 벗어나, 각자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는 목적에 부합하는 결말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질문은 남아있습니다. 이 영화가 결코 지난하게 이어진 모녀 관계 갈등의 봉합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연 엄마란, 또 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여성은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떤 것들을 요구받으며 살아갈까요? 이정과 수경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 욕망은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으며, 그들이 부모와 자식으로 엮여 있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자신의 속옷을 구매한 이정이 딱 그만큼 홀로 서 가며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끝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