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 9주차 여영추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알렉스 가랜드의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어느 날 운석의 충돌로 생긴 미지의 공간, 쉬머(Shimmer)를 탐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물학자인 리나는 쉬머에서 유일하게 생존해 돌아온 남편, 케인이 위중해지자 케인이 겪은 일을 알고자 탐사대에 자진 합류한다. 이후 쉬머 안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리나는 쉬머 내부에서 생물의 유전자가 변형되어 여러 종의 유전자가 결합된 돌연변이 종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자연의 이치까지 이해하려는 인간의 오만한 행태를 꼬집는다. 예를 들어, 영화의 시작과 말미에 관객은 보호복을 입은 채 리나를 압도하는 세 명의 남자 연구원들과 유리 벽 너머로 리나를 관찰하는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 한 연구원이 리나에게 던지는 질문들(“What did you eat?” “Can you describe its form?” “Was it carbon-based or…?”)은 쉬머 내의 상황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리나와 함께 쉬머 내부 사건을 지켜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연구원의 질문이 다소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운석이 처음 떨어진 곳, 등대도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등대는 깜깜한 바다에 빛을 비춰 배들이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이러한 등대의 쓰임은 인간 이성에 많이 비유된다. 그러므로 등대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쉬머는 곧 이성에 기반한 기존 사회의 붕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흥미로운 점은 이 등대는 블랙워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등대로, 다시 말해 인간이 그 자연을 관리하고 있다고 여기는 국립공원에서 쉬머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쉬머의 확장은 합리성, 효율성에 기반하여 체계적이라 자부했던 인류 사회에 대한 도전이다.
리나와 함께 쉬머 안으로 들어가는 여성들은 모두 현실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낙오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쉬머로 진입하는 자기 파괴의 길을 택한다. 특히 리나의 자기 파괴는 사회에서 기대하는 이상적인 부부 관계를 본인이 외도를 저질러 무너뜨렸다는 죄책감에서부터 나온다. 그렇게 쉬머 내부로 들어간 탐사대는 여러 종들이 하나의 개체에 결합하는 돌연변이 현상을 마주한다. 이때 본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육체적 변화는 사회 규범에 맞춘 사고방식과 남녀라는 이분법적인 형태를 벗어나게끔 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 드러나는 실제 케인의 죽음(리나가 쉬머 밖에서 만났던 케인은 외계 생명체가 결합된 또 다른 케인이다.)과 이후 벌어지는 리나 모습의 외계 생명체 죽음은 각각 쉬머 안으로 들어오기 이전의 케인과 리나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두 죽음을 통해 사회의 규율에 맞춰진 케인과 리나는 사망하고 이전과는 다른 케인과 리나가 탄생했다. 예시로 케인과 리나가 영화 마지막에 다시 만났을 때, 둘의 관계는 더 이상 ‘부부’로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인 셈이다.
이와 같이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합리적으로 규정되고 구분되는 사회에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의 규범이 획일적이지는 않은지, 편협하지는 않은지 질문한다. 나아가 “It wasn’t destroying. It was changing everything. It was making something new.”라는 리나의 대사처럼 이때까지 당연시 됐던 인류의 관념과 상식의 ‘소멸’은 어쩌면 새로운 미래로의 변혁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