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하지만 불완전하지는 않은 소녀들의 이야기

2025-1 9주차 여영추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

“화를 내고 소리치고 등 돌렸다 마주 보고

시샘하다 사랑하고 동경했다 증오하고

내딛다가 스러지고 고개 젓다 끄덕이고

흩어졌다 조립되고 망가지다 고쳐지고 ”

정우 - <JUVENILE> 노래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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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어느 여름, 세 자매의 엄마는 집을 나간 지 몇 달이 되었다. 16살 ‘로라’는 자신의 두 동생, 12살 ‘미라’와 8살 ‘스태피’와 함께하는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와중 사회복지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이들이 함께 만들어온 거칠지만 유일했던 세계이자, 낙원이었던 일상을 흔들기 시작한다. 마카 구스터프손 감독의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은 엄마의 부재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하여 제각각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세 자매는 서로를 아끼다가 소리치고 동경하다가도 화를 낸다. 그 복잡하고 생생한 감정의 밀도가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또한 이 세 자매의 주변에 있는 또래 친구들과 어른들은 다양한 여성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보다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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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그동안 주류 미디어와 영화가 반복해 온 소녀의 이미지를 정면으로 부순다. 어린 여자 아이들은 종종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취급되거나 낭만화된 첫사랑, 혹은 섹슈얼한 이미지로 소비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세 자매와 그 주변 여자아이들은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주체로 그려진다. 이들은 같이 놀다가도 주먹질하며 싸우고 사소한 계기로 멀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화해의 말 아닌 화해를 건네며 다시 함께한다. 이 과정에 어른들의 중재나 도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 영화에서 2차 성징을 지나는 소녀들의 몸은 성적으로 대상화되지도, 터부시되지도 않는다. 속옷도 월경도 가슴의 변화도 심지어 친구의 임신조차 그렇다. 이들은 함께 모여 서로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장의 순간들을 춤과 웃음이 있는 파티로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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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린 스태피를 그리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 스태피는 나이를 이유로 주변화되거나 납작해지지 않는다. 또래 공동체 안에서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스태피보다 나이가 많지만 이들은 스태피를 귀엽고 보호해야 할 동생으로 보는 대신,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며 소통한다. 그리고 스태피는 언니들인 미라와 로라보다 단단하고 복잡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언니들을 따라다니기보다 길에서 마주친 들개를 따라가 그와 닮은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도 하고, 시비 끝에 맞고 돌아와도 울지 않는다. 언니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중얼거리며 버려진 카시트를 나뭇가지로 있는 힘껏 내리치기도 한다. 한편 언니들에게 자신을 챙기라며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몰래 언니들의 간식을 뺏어 먹다가 걸리는 막내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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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있는 여성 어른들 모습과 이들이 세 자매와 맺는 관계 역시 인상 깊다.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이모 ‘베라’는 자신을 찾아온 로라에게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옆집에 사는 술집 주인 ‘자라’는 항상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자매들을 대하며 무심한 듯하지만, 미라의 첫 월경을 축하하는 파티에 쓸 와인을 준다. 우연한 계기로 우정을 나누게 된 ‘한나’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 항상 차분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과는 거리가 있다. 아이를 낳은 후 남편과 사이가 멀어진 한나는 로라와 일탈적인 행동을 같이하기도 하고, 변덕스럽게 행동해 로라에게 상처도 준다. 한나와 로라는 서로의 결핍과 고단함을 가지고 엇갈리다가 다시 마주치기를 반복한다. 이 영화의 관계들은 단순한 위로나 연대에 머물지 않고 신뢰와 불신, 두려움과 애정이 얽힌 복잡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어른과 아이, 또래 모두가 유동적으로 관계 맺고 흔들린다. 중간중간 변주되며 나오는 들개와 피의 이미지,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는 또래 여자아이들의 시선들은 시각적으로나 서사적으로도 불안정함과 강렬함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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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샬롯 리건 감독의 <스크래퍼>나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만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은 두 영화들과 다르게 영화 내내 가정 내 어른 보호자 없이 세 자매가 맞닥뜨리는 삶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엄마의 부재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다루는 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각 존재들이 다른 존재들과 부딪치며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로라, 미라, 스태피 그리고 한나를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불안정하게 흔들리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는 완전한 사람들이다. 낙원이 불타는 중이어도, 다 타고 재가 된 이후라도. 내딛다가 스러지고 흩어졌다 조립되는 얼굴들을 볼 수 있는 영화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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