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내가 정할 거야

2025-1 11주차 여영추 <2만 종의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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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불리고 있는 이름, 마음에 드시나요? 우리는 모두 태어나기 전에 타인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저 역시도 세상에 나오기 전에 지금의 이름을 받았죠. 이 이름이 마음에 드냐고요? 음… 솔직히 말하면 좋아한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왜???’

저는 그 이름에 의해서 해석되고 있으니까요. 영화 〈2만 종의 벌〉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해석되어 혼란을 겪는 한 아이가 등장합니다. 아이토르, 코코… 아니 루시아라고 해야 할까요? 고작 8살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는 왜 그토록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할까요? 궁금하시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세요 :-)



“페이오가 자기 이름을 싫어하면 어쩌죠?” “벌들아 내 이름은 루시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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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루시아)’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코코(루시아)’는 자신의 이름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을 듣고 성별을 먼저 떠올립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도 제 이름 '강예진'을 보고도 '여성'일 것이라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났을 때 자기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 여성(남성)분인 줄 알았는데 남성(여성)분이시네요.” 그 사람의 젠더 표현을 보고 어림짐작해서 말이에요. 참 이상해요. 그 누구도 자신을 “저는 여자입니다, 남자입니다.”라고 소개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코코(루시아)”가 자신이 부여받은 이름인 “아이토르”를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페인 사회에서 “아이토르”는 남성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지기에 그 이름 안에서 자신을 부정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에네코, 남자인 거 언제부터 알았어?”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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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루시아)’는 자신의 성별 정체성(사회적으로 정의된 성별에 대한 자각, 자아의식)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코코(루시아)’는 자신을 스스로 여성이라고 인식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남성으로 바라보고, 남성적인 젠더 표현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성별을 표기해야 하는 수영장 같은 공간을 꺼립니다. 그 상황이 너무나 불편하니까요. 저도 수영장을 정말 싫어합니다. 수영장은 원하지 않는 젠더 표현을 해야 하는 폭력적인 공간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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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엔 불필요한 성별 표현이 너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주민등록증이 있죠. 주민등록증에서 성별을 표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외에도 한국에는 수많은 성별 표현이 존재합니다. 언니, 오빠, 누나, 형, 삼촌, 이모, 이모부, 손녀, 손자, 서방님, 새아가, 제부, 올케, 상여자, 상남자 등등… 나열하기도 벅찬 수많은 성별 표현에 숨이 턱 막히는 건 저뿐일까요?



“2만 종의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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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2만 종이라니…! 참 많은 숫자죠? 하지만 우리는 2만 종이 훨씬 넘는 인구수를 가지고 있고, 모두가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아름다움을 단지 이분법으로 나누고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건 굉장히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까요?


잔잔하고 큰 사건이 없는 것에 비해 2시간 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정말 길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은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그 긴 과정을 섬세한 시선과 감정으로 압축해 놓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답니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끝에 “루시아”라는 누군가의 외침을 들었을 때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저는 매번 이 부분에서 눈물을 왈칵 쏟아낸답니다.)



“원하면 누구든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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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 각자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우리는 누구든 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용인되지 않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아직 나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내가 지은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저는 영화 <위키드>의 [Defying Gravity] 장면을 볼 때마다, 영화 <헤드윅>을 볼 때마다,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들을 때마다, Nemo의 “The Code”를 들을 때마다 벅찬 심장을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왜 그런지는 직접 보고, 듣고,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 그 이름과 마침내 찾아낸 정체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feat. 6월 14일 퀴어문화축제와 6월 프라이드먼스를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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