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 2주차 여영추 <미스리틀선샤인>
*<미스 리틀 선샤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정상성’을 공유하며, 그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합니다. 우리는 그 비정상을 개인의 결함으로 여기고, 그것이 공동체에서 외의 것, 즉 외부자로 판단하게 됩니다. 이는 거대하고 시의적인 주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깊숙이 담긴 작동 원리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경계한다고 해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지내는 한 정상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스 리틀 선샤인> (조나단 데이튼, 발레리 페리스. 2006)은 정상성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그래도 멋지면 그만이라는 말을 재밌고, 또 귀엽게 해냅니다.
어린 소녀 올리브의 ‘미스 리틀 선샤인’ 미인대회 출전을 위해 온 가족이 노란 미니밴에 탑승하며 여정은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정의 시작과 동시에, 이 가족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아빠 리처드는 성공학을 주제로 강연을 하는 실패한 강사로서, 패자가 되지 않고 승자가 되기 위해 강박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입니다. 할아버지는 마약 중독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났으며, 삼촌 프랭크는 자살 시도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실직한 학자입니다. 드웨인은 침묵 수행 중인 사춘기 소년으로, 전투기 조종사를 꿈꾸었으나 색맹임을 알게 되며 꿈을 잃게 되었고 올리브는 미인대회에 나가기에는 통통한 몸을 가진 소녀입니다. 심지어 그들의 미니밴은 고장까지 나게 됩니다. 여러 명이 힘을 합쳐 밀어주지 않으면 출발조차 하지 못합니다. 이 가족은 조금 불완전하다기보단, 사회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비정상 가족처럼 보입니다. 애를 써야 간신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고장 난 미니밴처럼요. 관객들은 이들의 여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을지, 그보다도 미인대회 장소에 아무도 낙오되지 않고 도착할 수 있을지조차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여정 도중에 드러나는 이들의 결함은 사실 영화 끝까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색맹은 여전히 색맹이고, 마약 중독은 끝내 죽음으로 이어지며, 승자가 되는 데에도 실패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결함들은 오히려 극복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분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로와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올리브는 아빠 리차드의 말 때문에 자신이 패자가 될까 두려워하지만, 할아버지는 올리브에게 “진짜 패자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용기를 줍니다. 드웨인은 자신이 색맹이라 비행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지만, 비슷하게 꿈을 잃게 된 삼촌 프랭크는 “고통이 나를 만들었고, 고통의 시간이 결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말을 해줍니다. 이들은 서로의 결함을 제거하거나 교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결함을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런 결함이 있어도 괜찮으며 그 결함을 통해 또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들이 여정 후반에 맞이한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들의 여정을 잠시 멈추게 만들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 번 속도가 붙은 고장 난 미니밴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듯이, 그들은 오히려 더 속도를 내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서로 다른 울퉁불퉁한 모양들이 천천히 굴러갈 때는 덜컹이고 삐걱이기 마련이지만, 급한 경사를 따라 굴러갈 때는 오히려 맞물려 매끈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그들은 갑자기 죽이 척척 맞아 할아버지의 시체를 훔쳐 달리기 시작합니다. 고장 난 미니밴을 온 힘을 다해 밀고, 차가 굴러가면 한 명씩 손을 잡아 뛰어 올라타는 장면은 정말 바보 같지만 단단하고 힘차고 벅차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정상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음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움직이기를 선택합니다.
결국 그들은 미인대회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곳은 판타지 같았던 도로의 여정과는 상반된, 다시 정상성을 요구하는 사회의 한복판입니다. 올리브네 가족을 제외한 모두는 우아하고 화려하며, ‘소녀답’고, ‘가족다워’ 보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려했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올리브는 절대 우승할 만한 소녀가 아닌데 어떡하지?” 그리고 올리브가 무대에 올라가 상처받지 않길 바랍니다. 이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올리브에게 선택을 맡깁니다. 그리고 올리브는 무대에 오르길 택합니다. 올리브가 무대에 오르고 이어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준비했던) 부적절한 춤은 대회의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의 관객인 우리조차 경악하게 만듭니다. 이후 올리브를 위해 가족들이 난입하며 무대는 더 난장판이 됩니다. 그들이 정상성에서 가장 멀어지는 그 순간에, 그들은 오히려 진정한 공동체에 가장 가까워 보이고, 가장 멋져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 눈물을 흘리고 그들을 위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는 비록 이상화된 정상성을 향한 여정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목적지의 정반대 편에 도착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결함을 가졌으나, 정상성 범주 안에 들기 위해 이를 숨기거나 고치려고 노력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좌절하고, 우울하고, 분노해 왔던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정 속에서 서로의 결함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함이 서로를 붙잡게 만들고, 새로운 공동체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비정상가족을 응원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 또한 각자의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결함이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때로는 비정상인 사람이 더 단단하고, 멋집니다. 그리고 비정상인 사람들끼리 함께할 때, 오히려 더 잘 굴러가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의 다른 모양을 보고 굴러가지 않는다 비난할 게 아니라, 함께 모양을 맞춰내 굴러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 영화는 크게 소리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