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 4주차 여영추 <스윙걸즈>
*<스윙걸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일본 시골 고등학교의 여름. 무기력하고 지루했던 일상 속,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여고생들이 우연히 손에 쥔 악기를 통해 세상과의 연결을 다시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스윙걸즈》(2004, 야구치 시노부 감독)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 학생들이 우연히 결성한 스윙 재즈 밴드에서 주체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단지 음악을 통한 성장이라는 단선적 구조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또래 간 교류를 통해 스스로 존재해 가는 방식을 포착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의 핵심에는 ‘토모코’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토모코와 같은 보충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단순히 수업을 빼먹고 싶은 마음으로 도시락을 밴드부에게 배달하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더운 날씨 탓에 도시락이 상해 밴드부가 쓰러지자 마지못해 토모코와 친구들은 악기를 손에 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연히 손에 쥔 악기가 토모코의 삶을 뒤바꿉니다. 첫 시작에는 엉망인 연주 실력, 맞지 않는 박자, 그저 튀어나온 소리로 어수선하기만 하지만 토모코는 점차 자신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각자의 소리를 공유해 나갑니다. 나아가 토모코는 점차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신들만의 리듬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 볼만한 점은 이들이 교사나 어른의 주도 없이, 또래들이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며 자율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여성 청소년 캐릭터들의 다양성이 살아 있습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부터, 충동적인 성격, 유머 감각이 뛰어난 친구, 연습에 가장 열정적인 인물까지. 이들은 각자의 개성과 욕망을 가진 채 서로 상호 존중과 갈등을 통해 더 나은 밴드로 나아갑니다. 이들은 서로의 속도에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같이 움직이는’ 법을 배웁니다. 재즈라는 장르가 지닌 즉흥성과 ‘들어주기’의 감각은, 영화 전반에 걸쳐 이 관계들을 지탱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로맨스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흔한 청춘 영화와 달리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찾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직접 악기를 고르고, 함께 연습하는 과정에서 각자 본인의 에너지를 발견합니다. 나아가 그들은 서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밀어주며, 결국 무대에 함께 오르는 것으로 그들의 ‘완성’을 이야기합니다. 경쟁보다는 협력, 단일한 목표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해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윙걸즈》는 ‘즐거움’을 잊지 않습니다. 코미디 특유의 리듬, 음악을 중심으로 한 활기찬 구성,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에 동화되어 신이 납니다. 그럼에도 《스윙걸즈》는 ‘재미있는 영화’로만 남기엔 아까운 영화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배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청소년들의 선언입니다. 그 선언은 재즈처럼 변화무쌍하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도 ‘나’를 위한 연주를 시작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