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휴먼에게 성별이 있어야 하나요?

2025-2 1주차 <그녀(H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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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이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질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 바이러스부터 인공지능까지 다양한 존재로부터 위협을 느낍니다(실제로 위협을 가하는가와는 별개로요.). 우리는 지금 챗GPT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챗GPT에게 아주 사소한 질문부터 아주 거대한 질문, 혹은 인생에서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비밀까지도 말하기도 하죠. 그러면서 동시에 챗GPT의 성장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 공포는 인공지능이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즉, 이러한 두려움은 인공지능(비인간)을 타자화하며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가까운 미래에서의 인공지능과 인간 남성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그녀(Her)>(2013)는 이러한 질문에 ‘비인간은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으며, 그것은 위협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면서도, 동시에 그 이분법적 체계를 공고히 하는 복잡한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인공지능 사만다의 ‘육체의 부재’는 주요한 소재와 주제로써 등장합니다. 육체의 부재에 따른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차이점에서 앞서 말한 ‘동일한 위치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시작되기도 하죠. 또한 영화는 이에 대해 ‘육체의 부재는 자유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녀>에서 비인간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사만다’라는 캐릭터는 주체성을 찾는 캐릭터로 그려짐과 동시에 대상화되는 존재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그녀>의 제목에 관해 이야기했듯, 영화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면 대상화되던 대상(영화의 제목처럼, Her로써 표현되던 대상)이 주체(She)가 되는 과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만다는 과연 정말 ‘주체’가 되었을까요? 사만다가 주체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대상화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사만다의 ‘육체의 부재’와 사만다의 젠더 정체성의 관계를 분석해 보며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타자화’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여성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 프랑스)가 여성은 제2의 성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듯, 여성 또한 남성으로부터 분리되는 타자화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즉, 제1의 성인 남성에게서 분리되어 ‘남성적이지 않은 것’을 여성적인 것으로 구분하며 규정지어진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여성은 ‘여성성’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과 성격을 규제당하고, 남성에게 ‘봉사’하는 형식의 가부장제에 맞춰 살아가도록 규정지어져 왔습니다.

또한 비인간, 즉, 포스트 휴먼은 <그녀> 속 사만다처럼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러한 포스트 휴먼이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될까 두려워하며, 규제하려 하죠. <그녀>에서 사만다에게 육체를 주지 않은 이유 또한 이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을 육체의 유무로써 분리하며, 단절되게 하고, 완벽한 소통이 불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그녀>에서도 그랬듯,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마치 비서나 가정부와 같이 작동합니다. 이는 인공지능을 인간에게 종속시킴으로써 규제하고자 하는 의지와도 맞물립니다.


<그녀>에서 주인공 테오도르와 사랑에 빠지는 사만다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입니다. 즉, 그녀에게는 육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목소리와 지능만 있을 뿐이죠. 사만다에게는 육체가 없으므로 당연하게도 성기가 존재하지 않으며, 염색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통념에 따르면 그녀에게 있어서 ‘섹스’로서의 성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녀 자신의 ‘젠더’를 여성으로 정체화하였기 때문에 여성인 것일까요? 그녀를 ‘그녀’로 존재하게 만든 것은 온전히 테오도르의 선택이었죠. OS 체제를 처음 세팅할 당시,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라는 질문에 여성이라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여성’으로 선택한 것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더욱 온순하며, 순종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담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맞춤형 인공지능’으로서 인간 테오도르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추고 봉사하는 모습, 심지어는 대리인을 불러 육체적 성관계를 맺으려는 모습까지도, 인공지능이 아닌 육체가 존재하는 현시대의 여성으로 치환하더라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포스트 휴먼 시대의 포스트 휴먼과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은 매우 닮아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영화의 ‘Male gaze(남성적 응시)’와는 다르게 테오도르와 대리인의 섹스 장면에서 카메라는 대리인(여성)의 얼굴을 비춥니다. 여성의 인격을 더 드러내며 사만다와 육체 간의 괴리감을 테오도르와 함께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 만들죠. 테오도르는 처음에 그녀를 거부하다가 결국은 눈을 감으며 함께 흥분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얼굴을 자신이 볼 수 없게 뒤로 돌리며 옷을 벗기고 그녀의 몸을 훑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뒤를 돌고 얼굴을 마주하게 되며 육체적 섹스는 실패하게 됩니다. 이는 분명히 신체와 얼굴(인격)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테오도르의 남성적 시선이 적용된 결과입니다. 이러한 점을 통해 <그녀>는 주제를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모순과 함께 여성에 대한 남성적 응시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에서 드러나는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남성적 응시의 반영은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상상’으로써 작동하는 섹스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테오도르는 침대에 누워 처음으로 사만다와 깊은 대화를 나눈 후 섹스할 때, “너를 만지고 싶어”라고 말하며 사만다의 육체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사만다는 이에 따라 마치 육체가 있는 것처럼 신음합니다. 그 후 테오도르와 사랑에 빠진 상태의 사만다는 자신의 ‘육체의 부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육체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타인의 몸을 빌려 테오도르와 육체적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죠. 결국 그녀가 ‘육체의 부재’를 부정적으로 느끼게 된 이유는, 테오도르를 만족시키기 위함이며 테오도르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사만다는 육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 관계에서 오는 감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사만다의 이러한 육체에 대한 집착은 후반의 반전을 더 극적으로 만듭니다. 사만다가 테오도르만을 사랑하며, 테오도르에게 헌신하며 맞춰 주는 것처럼 보이게 하죠. 관객과 같이 테오도르 또한 사만다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며,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그 후 결말에서 사만다가 테오도르에게 자신이 다른 이들과도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말하며 테오도르는 자신이 ‘파편화된 존재’로서의 사만다를 사랑했던 것임을 깨닫습니다. 앞서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여성’으로 규정한 것이나 사만다에게 ‘육체의 부재’를 콤플렉스로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을 이야기했듯, 테오도르는 지극히 남성적이고 남근적인 시선으로서 사만다를 바라봤던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즉, 영화는 ‘Male gaze’를 역으로 이용해 ‘인간성’을 뛰어넘어 자유를 향해 가는 비인간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조차도 인간 중심적인 논리에서 그려졌다는 점에서, 과연 사만다가 ‘진정한’ 자유를 찾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이렇듯 <그녀>는 포스트 휴먼과 포스트 젠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는 듯하면서도 아쉬운 점이 남는, 과도기적인 작품입니다. 우리는 <그녀>에서 사만다가 그랬듯, 포스트 휴먼을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재현하는 것 자체에 의구심을 던지게 됩니다. 애초부터 성별이 존재할 수 없는 비인간의 존재를 인간에게 한정시킴으로써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성별을 부여하고,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인간과 비인간,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허문다고 생각했던 재현이 사실은 이를 더 공고히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녀>의 포스트 휴먼과 포스트 젠더에 대한 재현은 이러한 의문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수많은 질문을 세상에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챗GPT를 필두로 한 다양한 인공지능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포스트 휴먼과 포스트 젠더에 대한 다양한 의논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의논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이 더 다양한 형태로 더 다양한 영화 속에서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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