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인이 된 이후로 매일 한 잔씩 아메리카노를 마셨습니다.
저는 겨울에도 찬 음료를 마셔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항상 아이스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꿀꺽꿀꺽 마시고
남은 얼음을 아작 씹는 게 그렇게도 짜릿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잠이 많아 항상 비몽사몽이던 제정신을 깨우는
일종의 포션과도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메리카노는 먹는 것 같지 않다고 믹스커피를 드시는데
저는 반대로 믹스커피를 마시면
그 특유의 텁텁하고 뭔가 답답한 맛이 나는 것 같아
믹스커피보단 한잔에 2,000원씩 하는 아메리카노를 꼭 사 마셨습니다.
물론 요즘은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게 커피머신이 잘 나와 있긴 하지만
어차피 기계를 사도 카페에 가서
또 커피를 마실 저를 알기 때문에 커피머신은 따로 사지 않았어요.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잠이 깨는 느낌이 들고
뭔가 일이나 공부에 집중이 잘되어서
항상 루틴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곤 했어요.
예전에 대학 다닐 때는 제가 커다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매일 한 잔씩 들고 다니니
동기 언니가 '넌 참 커피를 좋아하는구나'한 적도 있습니다
콜센터상담원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우울하고 퍽퍽한 날,
진상고객 때문에 속상했던 날,
같이 일하던 직원과 싸웠던 날,
다른 직원들과 친목을 도모할 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원두 기계에서 커피콩을 갈아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해 물과 함께 섞은 물일 뿐인데
매일 먹다 보니 저에게는 그 물이 너무나 특별해졌어요.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항상 연하게 마시는 편이에요.
투 샷은 너무 씁쓸하고 한 샷 넣은 아메리카노가
적당히 구수하면서 부드럽더라고요.
아메리카노는 바디감이 있는 원두를 좋아하고
라떼는 산미가 있는 원두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요즘에는 예전처럼 원두를 골라 마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더라고요.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던 시절의 얘기를 조금 들려드릴게요.
저는 물리치료학과를 나왔는데 그 당시 방황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면허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러고 나서 살길이 막막해서 찾아보던
제 눈에 들어왔던 게 바로 콜센터 상담원이었습니다.
저는 S 모 쇼핑몰에서 일하던 상담원이었는데 처음에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절대 얇지 않은 교재에는 교환/반품부터 시작해서
CS에 관한 내용들이 빼곡히 쓰여있는데
열심히 교육을 받았음에도 처음에는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했어요.
그래도 조는 사람 틈에서 열심히 교육을 듣던 편이었고
같이 입사한 동기들과 같이 공포의 첫 콜을 받았고
첫 콜은 그야말로 엉망 그 자체였습니다.
고객님이 뭐라고 말하는데 머리가 새하얘져서
어떻게 전화를 마무리한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저랑 옆에 앉던 저보다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건물 내 카페테리아에 있던 커피를 같이 사 마셨습니다.
저는 밥 먹고도 항상 커피를 마시곤 했거든요.
커피를 마셨다고 제가 콜 받는 실력이 좋아졌다거나
말이 능수능란하게 나온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긴장은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내내 저는 음료를 달고 살았어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입이 자꾸 말랐고
긴장되면 뭔가를 자꾸 마시는 습관이 있었거든요.
매일 아침 일어나 전철에 몸을 싣고
아침에 먹을 밥과 함께 자연스레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마시곤 했습니다.
사실 콜센터에서 일하던 시절에
실적이 좋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었어요.
50 콜이 기본이던 때에 저는 기껏해야 30 콜을 받던 사원이라서
관리자에게 자주 호출당해 좋지 않은 실적에 대해 추궁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 속상하던 제 맘을 달래주던 게 씁쓸하고 새카만 아메리카노였어요
콜센터 상담원으로 1년 반을 일했는데
거기서 먹은 커피만 365잔이 넘을 거예요.
그때 먹은 커피값으로만 100만 원이 넘게 썼을 것 같은데
제가 먹은 음료수 컵을 세보면
어쩌면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카페의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도 아메리카노는 제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친구입니다.
어떨 때는 사람보다 매일 아침 마시는 이 새카만 물이 더 나을 때가 있단 생각도 하곤 해요.
아메리카노는 친구로 치자면 MBTI T성향의 나를 채찍질하면서도
당근을 줄 땐 확실히 주는 그런 친구 같아요.
아메리카노를 처음 먹었을 때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 어린 시절의 저는 아메리카노가 쓰고 이걸 왜 먹냐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근데 이 쓴맛에 중독이 되니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한잔이 되었어요.
제 친구들은 제가 커피를 사랑하고 카페를 좋아하는 걸 알아서
만나면 항상 카페에서 만나곤 했어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술집에서 만나듯이
저는 커피를 좋아해서 항상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부모님도 제가 카페와 커피를 좋아하는 걸 잘 아셔요.
만약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잠을 잘 잤다면 저는 커피를 하루에 5잔도 더 마셨을 거예요.
콜센터서 일하던 시절은 하루에 많으면 커피를 석 잔까지도 마셨지만,
지금은 커피는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으로 제한하고 있어요
30대로 나이가 드니 이제는 카페인을 많이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잠이 안 오더라고요.
모든 카페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메뉴는 달콤하고 시원한 스무디도 아니고
청량하고 상큼한 에이드도 아니고 아메리카노잖아요.
저도 그런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달콤하지 않고 쓰지만 칼로리도 낮고 무엇보다 모든 직장인의 친구잖아요.
저에겐 아메리카노가 습관이고 하루를 여는 시작이고 동반자예요.
여러분에게는 아메리카노가 어떤 의미인가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