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by 나힐데

두려움도 내성이 생긴다. 아니, 인간이 갖는 모든 감정은 내성이 생겨 점점 무뎌진다. 그렇지만 나는 그 두려움을 잊지 않으려 했다. 매번 어릴 적 머물렀던 감정 그대로 간직한 채 그와 비슷한 감정이 처한 상황에서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가끔 정서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추억의 장면장면까지도 잊지 않으려 했다.


자야와 사촌 큰언니와는 열한 살 사이다.

“워째 인자 나오냐?”

“아따 가시나가 딱 들러붙어 나올 수가 있어야제! 갸 떼어 놀라고 치칸에 앉아 있다 시방 나왔시야”

땅코언니는 코에 침을 바르며 종아리를 어루만지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 답을 했다.

그때 짚동우리 처마 아래 쭈그리고 앉아 있던 자야는 슬그머니

“언니”하고 일어서며 땅꼬언니 치맛자락을 잡았다.

“내가 미챠 언제부터 여그 있었냐?”


그런 밤마실이 몇 번 있었고, 땅꼬 언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나가 산업 역군이 되었다. 둘째 사촌오빠와 막내 사촌오빠는 일찍 학교에 가고 자야는 마당에 서 있는데, 배네 아짐이 들어오면서 자야를 쳐다봤다.


“시방 너 뭐하고 있냐? 큰 엄마 기시냐?”

“야, 정지에 기셔라우”

“조막만했는디, 많이 컸다이, 너 몇 살이냐?”

“여섯살인디요”


정지에서 큰엄마와 베네아짐이 나오면서 베네아짐은


“자야, 오늘 아침 집에 가서 밥 묵자.”면서 자야를 데리고 갔다.

그때만 해도 시골이나 섬에 젊은 사람들이 많았었다. 배네아짐 집은 기와집으로 동네에서 제일 큰 집이었다. 자야는 마루 기둥에 기대고 걸터앉았다. 배네아짐은 아침상을 차려서 자야 앞에 놓고 먹으라고 했다. 자야는 밥을 먹고 배네아짐은 일이한테 젓을 물렸다.


“느그하고는 집안네가 돼야. 느그 고무가 일이네 집안으로 시집왔응께, 시방부터 언니라고 불러라! 어찌어찌해서 촌수로 따지믄 내가 언니 돼야!”


배네아짐은 젖을 먹다 잠이 든 일이를 자야 등에 업혀주고 하얀 기저귀를 허리와 어깨로 돌려 매 주며


“그랑게 언니라고 부르믄 된다이?! 내가 참하고 점심거리 가지고 강게 너는 찬찬히 설거지하고 짱 골 언니네 밭으로 오믄 돼야. 알았제?”

배네아짐은 그렇게 말하고 참과 점심거리를 이고는 어지레밭 너머 짱골로 갔다. 일이를 업고 설거지를 하자니 허리춤이 뜨뜻해지면서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일이를 내려놓고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 갑자기 일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루에서 일이가 굴러 마당에 떨어졌던 것이다. 자야는 일이를 안아 마루 기둥에 기저귀를 펴 놓고 아기를 앉혔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 펴진 기저귀로 일이와 자기를 돌려 묶었다.

“괜찮치야? 괜찮어야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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