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장치
순수함을 간직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의 축복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순수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쉽지 않고, 그 누가 강요하진 않았지만 무너지기 전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이해를 요하지 않는다 그냥 그럴 뿐이다.
자야의 이중성을 갖는 자아정체성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모네 집과 학교를 오가는 중에 어른과 어린이의 공존, 그 사이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그 상황을 극복했어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자야에겐 늘 남들이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자신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그 반쪽은 자야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자야에게 거의 매일 등교는 전쟁이었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외종 사촌 호의 등을 밀어가면서 앞세우고, 심을 업고 학교를 다녀야 했다. 심이 칭얼대고 울기라도 하면 교실밖 복도에서 유리창 너머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이모는 소풍날이면 찹쌀로 밥을 해서 절구통에 찧어 콩가루를 묻혀 주먹떡을 해서 넣어 주곤 했다. 물론 삶은 계란도 같이. 소풍날이면 친구들의 처지가 극명해졌다. 면서기나 지역유지의 자녀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준비한 찬합 속의 그 화려한 반찬이라 함은 구경해보지 못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매일은 익숙해지지 않는 새 날들이었다. 자야는 학교에서만큼은 온전히 자신이 되는 듯했다. 뛰고, 달리고, 학교 뒷산으로 올라가 형사놀이에, 칼놀이에 거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휘하에 두고 진두지휘를 했다. 나이 한 살은 높은 이해력으로 공부를 별도로 하지 않아도 앞서 있을 수 있었다. 숙제로 내주었던 송충이 잡기라든지 잔디씨 받아 오기는 따라올 친구들이 없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정신 팔려 어울려 놀다 보면 이모이모부의 꾸중은 당연하지만 회초리에도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날이면 물로 배를 채워야 했고,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꾸만 구멍가게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림자 길이가 더 이상 길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서는 길엔 늘 다독이는 말동무가 있었다. 혼잣말로 다독이는 자야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남들처럼 아이스깨끼도 사서 먹고 싶다고. 어느 날 이른 아침 자야는 닭장에 있는 계란 두 개를 쇠꼴 둥치 밑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또 두 개를. 계란 한 꾸루미를 가게에 내밀자 주인장은,
“찹쌀 한 되박 가져오면, 저 콘 주마!”라고 말을 하며 ‘티나콘’을 가리켰다.
자야의 가슴은 이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첫날 계란 두 개 쇠꼴 둥치에 밀어 넣었을 때와는 달랐다. 심장이 밖으로 나와 귀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내 속삭이는 소리에 안정했다. 들키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말을 위안 삼았다. 어린 자야이지만 내심 그동안 이모이모부가 부려먹은 것만으로도 그 정도는 충분히 권리가 있다고 자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