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철저하게 타인이다. - 소노 아야코 -

두 달짜리 모성

by 정말빛

끝내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도대체 비는 언제 그칠지 모르겠다. 걸음을 걸을 때 질척거림이 참 싫다. 꿉꿉한 공기도 싫다. 일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매일 짜증 섞인 날들이 계속되었고 한동안 모습을 숨기던 우울들이 검은 그림자를 앞세우며 나를 찾아왔다. 어제 이른 퇴근을 하고 오후 세시에 잠들었다. 눈을 떠 보니 오늘 오전 10시 30분. 죽은 듯이 잔 것 같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일일이 답장할 기운도 없다.


침대에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우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밀린 집안일을 하는데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이를 악 물고 빨래를 주섬주섬 모았다. 에어컨을 켜지 않은 거실과 주방을 오다가 보니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문득 전화기가 무음 모드인 것이 생각나 소리 모드로 바꾸어 놓았다. 혹시 걸려올지 모르는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먹는 것도 귀찮고 이상하게 배도 고프지 않다.


친청동네에 비가 많이 내려 피해가 속출한다는 기사를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당신 걱정을 말라시며 나를 걱정하셨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안일에 지쳐 침대에 다시 누웠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나야. "

"밥은 먹었어? 힘들지 않아?"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왜 울어? 이번 주에는 훈련 안 했고 여기 tv도 보여줘. "

아이는 애써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어디 앞면 참지 말고 다 이야기해야 된다. 밥 잘 챙겨 먹고. 아삐 언락 기다리시겠다. 전화드려. "

그토록 듣고 싶던 아이의 목소리인데… 나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아이가 걱정하는 게 느껴졌다.


혼자 쭈그려 앉아 펑펑 울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더 이상 힘들어 못 울겠다 싶어서야 눈물이 멈추었다. 욕실에 가 거 울을 보니 흰머리가 서너가닥 늘어 보인다. 좀 울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나는 일본 할머니 작가 소노아야코를 좋아한다. 그녀의 글은 간결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책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녀는 철저하게 타인이다. 타인 중에 특별히 친한 타인이다.' 많이 공감했다. 나는 아들 둘을 키우며 조금은 모진 엄마였다. 큰 아이가 태어나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친정부모님께서 아이를 데려다 키우셨다. 부모님 보기에 나는 직장일을 하며 아이를 키울만한 체력이 안 되는 금쪽이었다. 우리 부모님께 나는 ‘폭싹 속았수다 '의 금명이 같은 존재였다.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들이라 예의 없다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유독 모질게 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모자란 생각이다. 아들들이 커 가면서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듯 최선을 다했다.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아들들은 잘 자라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 사랑을 느낄수록 그들의 인생에 내가 개입하고 싶어 질까 내 마음을 단속했다.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아이들에게서 내가 독립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사람들이 자식일로 마음앓이를 할 때, 나는 주제넘게 아이들의 인생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봐주라는 말을 했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라고.


나는 아이들의 진로나 학업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큰 아이는 재수까지 하면서 대학에 진학했고, 작은 아이는 대학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고1 겨울 방학에 대학입시를 거부했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이들에게 얽매이는 엄마로 살지 않다 보니 나는 평온한 40대를 보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50에 두 아이를 독립시켰다. 아이들은 독립에 성공했는데 아직 나는 온전하게 아들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만 쿨하고 강한 엄마였나 보다.


큰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나 입대하고 엄마 엄청 울었던 거 알아? 그거 딱 두 달 짜린 거 알지? 잘 생각해 보고 그만 울어. 나 제대 겨우 5개월 남았어. "

이런 이런… 그때도 이렇게 청승을 떨었구나. 이제 기억이 난다. 두 달이 지나면 다시 쿨한 엄마가 된다는 것이. 해가 쨍하게 뜨면 기분도 나아지려나.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