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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May 16. 2024

공양보살

내 어머니의 사랑법

마을 언덕에 자리 잡은 작은 암자에 사람들로 가득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 등을 달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러 온 방문객들이 대부분이다. 그 사람들 사이에 치찻빛으로 조끼를 맞춰 입은 절의 실무진들이라 할 수 있는 보살님들이 바삐 움직인다.

우리를 알아본 엄마가 멀리서 손짓을 하신다.

여동생 내외와 나는 엄마가 계신 곳으로 갔다.

“부처님께 가서 절부터 올리고 내려오너라. “

이여사는 오늘 곱게 화장을 했다.

안 그래도 젊어 보이는 얼굴이 오늘은 새색시 같았다.


절을 올리고 내려오니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들을 가져다 식사를 하라며 엄마가 손짓을 한다. 고기를 쓰지 않는 절에서의 공양은 대부분 나물과 미역 냉채, 과일들이 전부다. 얇게 채친 당근, 곱게 자른 표교버섯, 미나리의 통통하고 굵은 대만 사용해서 만든 깔끔한 나물들. 이건 물어보지 않아도 우리 이여사 솜씨가 분명하다.

넓은 면기에 각종 나물들로 비빔밤을 담고 액젓이 들어가지 않은 얼갈이 깻잎 전을 접시에 담고 자리에 않았다.


사찰 음식을 먹을 때면 구 흔한 액젓 한 스푼을 넣지 않고도 어떻게 감칠맛을 낼까 궁금증이 생긴다. 작년에 먹은 가지 탕수육은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 이여사는 주유사 공양보살이다. 원래 공양보살은 스님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업무를 하는데 엄마가 다니는 주유 사는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기거하신다. 평소에는 두 분이 직접 식사를 해결하실 수 있도록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놓으시고 자주 들여다보신다.

절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할 때 부처님께 올리는 상(불교용어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을 스님과 힘께 준비하는 것이 엄마의 주된 역할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나 동지, 김장날 같이 사람이 몰릴 때는, 보살이라 불리는 절의 주요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일을 하고 엄마는 진두지휘를 하신다.


“엄마, 힘들지 않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남들은 돈이 있으니 절에 작은 건물이라도 하나씩 지어주고 필요한 것 사주고 하더라. 나는 돈이 없으니 내 노력을 공양으로 받치는 거야.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그럼, 엄마는 주로 뭘 기도해?”

예전에는 자식들 기도 하고 손주들 기도 했지. 그런데 요새는 나를 위해서 기도해. 내 행복과 건강을 빈다. 그래야 지식들이 편안하지”

결국엔 자식을 위해 자기 행복을 기도하는 우리 이여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매일 같이 절에 올라가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다. 나라면 절대로 못했을 일이다. 엄마에게 아버지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가끔 술을 한 잔 같이 마시는 날이 있으면 엄마는 아버지를 사랑했다고 한다. 이해되지 않지만 엄마의 감정을 존중한다. 아빠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다고. 그래서 아빠를 미워하지만은 않는다고 하셨다.


엄마가 만드신 나물로 절밥을 배가 터지게 먹고 요새 보기 귀한 수박까지 대접받았다. 내 가족의 안위를 기도하는 등은 1년 내내 법당 안에 모셔진다. 보통은 가장의 이름을 시작으로 가족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는다. 하지만 우리 삼 남매의 등은 다르다. 나, 여동생, 남동생의 이름을 제일 앞에 크게 쓴다.

이것이 공양보살 이여사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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