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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May 19. 2024

은용리 23번지

나의 작업실

탁탁탁… 새로 산 무선 자판기 소리가 좋다.
나는 지금 작업실에서 글을 쓴다.

급하게 가방을 챙겼다.
바쁜 일도 없는데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할 것 같았다.
현관 앞에는 나의 숙제이자 즐거움인 서평 도서들이 세 권이나 와 있었다.
어서 가자. 작업실로.

집은 조용하고 아무도 없다. 내 방에 가구라고는 침대와 책상뿐.
그런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자꾸 침대로 기어들어가려는 본능에 충실한 몸뚱이.
차를 몰고 시골길을 지나 작업실에 도착했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지난가을.
갑자기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글 몇 줄 쓰는 것과 말도 안 되는 실력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핑계를 만들었다. 집에서는 유화작업을 하기가 힘드니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더 이상 책을 쌓아둘 공간이 없다.

결심이 선 다음날 집에서 가까운 원룸촌 부동산으로 직진. 두어 집을 살펴보고 지금의 작업실을 바로 계약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침대가 없고 아주 구석진 곳에 있다. 그리고 베란다가 있었다. 베란다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맥주를 한 잔 마시는 로망?

중고로 책상을 사고, 새벽배송으로 미술도구들을 주문했다. 여행용 케리어에 책을 가득 담아서 두어 번 나르는 이사를 혼자서 낑낑거리며 해냈다. 추진력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기다릴 줄 모르는 충동적인 성격 탓이다.
세상 재미 중에 최고 재미는 돈 쓰는 재미다. 물론 당근과 최저가를 한참이나 둘러봐야 하는 얄팍한 지갑이긴 하진만.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 조명들, 서랍장 기타 등등 살림살이들을 주문하는데 희열이 느껴졌다. 그렇게 3일 만에 꾸며진 곳이 은용리 23번지.

이 작은 공간은 매우 소중하고 유용하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이곳을 찾는다. 주변에 형제도 친구도 없는 내게 유일한 놀이터가 되어 준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외로울 틈이 없다. 갑자기 마주하는 우울에서 도망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작업실은 내 허영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나는 작업실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다... 사실은 외롭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 느끼는 외로움은 혼자일 때보다 더 힘들다.
공간이동을 선택했다. 공간이 주는 당연성.
내가 선택한 혼자만의 공간이니 외로운 게 아니라 즐기는 거라고.
누구에게도 이곳을 알리지 않을 참이다. 계속 혼자를 즐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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