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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n 17. 2024

수면제의 저주

반성의 글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불면의 밤이 길어질수록 삶의 질이 떨어졌다.

고질적인 위장병과 두통이 나아지지 않아 동네 내과를 찾았다.

의사에게 혹시 불면이 내 병이 낫지 않는 것과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며 수면제 한 달 치를 처방해 주었다. 복용 주의법으로 하루 1정 이상 먹지 않을 것과 잠을 자기 직전에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신과가 아니어도 수면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에 말할 걸 그랬다.      


처음에는 반 알로 시작했다.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의 기분에 새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약의 복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반 알로 잠이 들지 않아 약을 한 알로 늘렸다. 약을 늘리고 아침에 불쾌한 두통이 동반되었다. 하지만 두통은 곧 사그라들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의사는 당연한 듯 수면제를 처방해 주었고, 나는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약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삼차신경통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 나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한 알로 잠들지 못하는 걸 알고 약을 모았다가 두 알을 먹었다. 약 두 알을 먹고 나면 몸이 나른하고 몽롱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갑자기 팍 꼬꾸라진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침대 옆에 빵 봉지 여러 개가 뒹굴었다. 너무 놀랐다. 어제 잠든 순간부터 내 기억의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워가며 시간을 더듬었다. 내가 빵을 먹은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꿈을 꾸다 그랬나 싶기에는 내 행동의 시간이 길었을 것이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어야 한다.     


어느 날은 집으로 택배가 40개 정도 도착했다. 나는 주문한 적이 없다. 급하게 쇼핑 앱을 열어보았다. 내가 주문하고 결재까지 했다. '섬망 증상(뇌의 전반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이었다. 그때는 이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과를 찾았다.     


나는 지금 반성 중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 나 같은 약물 오남용 환자가 있을 거로 생각하고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싶기 때문이다. 수면제를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음도 지적하고 싶다.


내가 처음 약을 처방받던 날 약의 부작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간단한 복용 방법만 안내받았을 뿐이다. 의사와 충분히 상담 후 약의 부작용과 약이 위험성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내가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일이 가능하게 했던 시스템의 정비는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치료와 상담을 병행 중이다.

내가 처음부터 정신과 병원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은 당시 직업이 교사였기 때문에 누군가 에에 알려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병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혹시 지금도 나와 같은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줌과 더불어 마음이 아프다면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기를 권한다.


이 글은 편집되어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실렸습니다.(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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