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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n 19. 2024

남편. 눈치 챙겨라

궁채를 어쩌라고

시어머니는 매우 부지런하고 깔끔한 어른이시다.  전업으로 농사를 짓지는 않으셨지만 시골 작은 땅을 평생 놀리지 않으셨다. 연세가 많아지면서 밭농사가 힘에 부쳐하시더니 더 이상 돌볼 수 없게 되셨다. 어머니의 걱정과 한숨이 늘어가자 7남매 막내아들인 존경씨가 효심을 발휘했다. 잘한 일이었다.


평생 공부만 한 샌님 존경씨는 호미질 삽질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지만 노모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느덧 농부 경력이 5년째 접어든다. 그는 언제 무엇을 심어야 할지 연초에 계획을 세우고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토요일은 빠짐없이 밭으로 간다.


토요일 대전에서 수업을 듣고 피곤에 절어 집에서 널브러져 있었다.

현관문 비밀번호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참 가관이다. 보따리 보따리 쌈채에 이번에는 처음 보는 풀이 검정봉지 가득했다.


몇 주째 주말에 쌈채를 먹어치우느라 토끼똥을 싸고 있다.


"이게 뭐야?"

"궁채. 작년에 마누라가 장아찌 맛있다고 해서 키웠어. 잎은 쌈 싸 먹고 줄기로 장아찌 만들면 된다." 흠... 저 의기양양함. 

"이거 손질하기 힘들다던데..."

"그래?" 존경씨는  검색을 시작했다.

잎을 다 쳐내고 껍질을 벗겨 건조하고...


한 줌 사서 맛있게 몇 끼 먹으면 될 것을 일을 크게도 키웠다. 짜증이 밀려들었지만 좋게 말했다.


"그래도 신랑밖에 없네. 스치는 말인데 이렇게까지 챙겨주고. 고마워" 코맹맹이 소리를 섞었다.


무뚝뚝한 존경씨는 말이 많이 진다. 이게 어디에 좋고 뭘 넣으면 식감이 좋아지고...


눈치 챙겨라 신랑아.


사실 나는 꽤나 감동했다. 말로 사랑을 표현하고 감동시키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내 남편 존경씨는 말이 없다. 재미도 없고 애정표현도 없다. 하지만 지금 쪼그리고 앉아 궁채 껍질을 손수 까고 있다.


내 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다. 존경한다.

근데 나랑 안 맞다.

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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