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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n 21. 2024

19금

점심시간이 가까워 아이들을 챙기는데 전화가 깜빡인다.

둘째 아들의 전화다. 학교에 있을 시간에 전화가 오니 걱정이 덜컥 된다.

"엄마, 나 병원이야."

"또 왜?"

또... 왜


둘째 아이는 올해 19살 고3이다. 어릴 적부터 자유분방한 성격에, 다사다난한 사건사고를 경험하게 해 준 나의 金쪽이다. 운동을 좋아하고 조심성이 없어 다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예민하고 여린 마음에 눈물 많고 정도 많은 아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자신은 대학에 갈 마음이 없으니 공부를 하지 않겠다 선언하고 나는 아이의 결정을 인정해 주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것이 다 같기에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내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의 행복을 응원하겠다. 강요하지 않겠다.


고등학교 3년을 집에서 디굴거리며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을까 말 못 하는 가슴앓이를 하는데 아이가 나에게 상의할 것이 있다며 먼저 입을 열었다.

"공부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은데 엄마는 뭐가 좋을 것 같아?"

아... 그래도 맹탕은 아니구나. 안심이 되면서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졸업 전에 두 개의 자격증을 따기로 하고 가구제작기능사와 미용사 자격증을 골랐다.


아이는 자기가 결정한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속한 날 수업에 빠지지 않았다. 여리고 고운 손으로 대패질에 못질을 해 가며 낑낑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운 날도 있었지만 한 발 떨어져 지켜보기만 했다. 목공 시험 실기에서 두 번 떨어지고 고3이 되어 미용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포기가 아니라 보류라 말하며 두 번째 자격증을 따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학원에서 성실하다며 주말 미용실 아르바이트를 추천받았다. 주급을 받는 날이면 가족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봉지 가득 사다 냉장고에 채운다. 마음이 곱다.

자식은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자란다고 했다. 아이를 믿고 응원해 준 나 자신을 칭찬한다. 본인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찾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책임 있는 시간을 보내는 내 아이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낸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내 가장 가까운 손님이다. 손님에게 정성을 다해 대접하고 떠나는 날 환한 미소로 배웅하는 것이 집주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이 없으니 손님과 주인은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다음 주 미용 실기시험인데 발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한 금쪽이를 병원에서 마주했다.

"엄마, 나 미용실 알바 못 가는데 어떡하지?"


이번 시험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깁스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미용학원에 간다.

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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