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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l 12. 2024

39금 나이트클럽

혼자 갑니다. 

옷을 차려입었다. 너무 화려하지도 단정하지도 않게 적당히 튀는 만큼. 액세서리는 좀 과해도 좋다. 신발은 최대한 편한 것으로 신어야 한다. 나의 광란의 밤을 위해.

택시를 불러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나는 두어 달에 한 번쯤 나이트클럽에 간다. 동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춤을 추러. 술은 잘 마시지 않는다. 맨 정신으로 미친 듯이 노는 희열을 즐기기 위해서다.


처음 혼자 나이트 입구에 들어갔을 때 문을 지키는 사람이 혼자 왔냐고 물으며 썩 반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끼리 혼자 온 이상한 여자를 경계하는 느낌이 들었다. 웨이터를 지명해 주는데 신입으로 들어온 노년의 마른 아저씨였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온 날은 지인들과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취기를 달랠 겸 집으로 걸어가는데 나이트클럽을 홍보하는 화려한 트럭이 지나갔다. 호기심이 생겼다. 그 길로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밤 10시를 갓 넘긴 시간인 데다 평일 밤이어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클럽에 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시끄러운 음악과 화려한 조명에 갑자기 흥이 났다. 혼자 온 것이 미안해 가장 구석 자리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춤추는 사람들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취기 오른 사람들의 춤은 각양각색이었다. 코요테의 순정부터 제목을 모르는 최신 아이돌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에도 찌르고, 돌리고만 반복하는 아저씨 부대들, 한껏 멋을 부리고 에어로빅댄스처럼 신나게 흔드는 한 무리의 여성들. 음악을 바꾸기에 바쁜 DJ도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운 몸치인 내가 터벅터벅 스테이지로 걸어갔다. 스피커 앞 제일 구석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음악에 몸을 맡겼다. 아는 사람 없고 잘 보일 사람도 없고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다. 용기가 생기니 몸은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대학 시절 록카페에 갔던 추억을 떠올리며 신나게 흔들었다. 발바닥이 뜨끈해질 즘 블루스 타임이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혼자서 고요와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던 내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이 공간이 주는 무관심이 좋았다. 주변이 시끄러워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없는 요란함이 좋았다. 온전히 음악과 나에 집중할 수 있는 비밀 아지트가 생긴 기분이었다. 누군가와 같이 갔다면 웨이터의 손에 이끌려 이 자리 저 자리 부킹을 당했을 테지만 구석에 혼자 앉은 여성에게 관심을 주는 이가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해방감을 느꼈다.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춤을 추는 이유는 다르지 않을까? 행복을 더하는 춤이 있고, 슬픔을 감추는 춤이 있고, 아무 생각 없는 춤도 있겠지. 시끄러운 음악에 맞추어 악을 쓰며 노래하고, 등이 흥건해 질만큼 땀을 뻘뻘 흘릴 때까지 몸을 흔들면 즐거움은 배가되고 슬픔은 잠시 사그라들겠지. 나처럼 생각 없이 왔다지만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암울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춤이 주는 매력이자 감춰진 흥과 용기가 폭발하겠지.


낯선 이와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인 사람이 있겠지. 이곳은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많은 것이 허용되는 공간이다. 

다음 스테이지가 열리자 라이브밴드가 공연했다. 이름 없는 무명 밴드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저 무대에서만큼은 그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노래에 맞추어 신나게 춤추고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그들의 주인공인 무대에 열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간을 떠올리며 밴드의 진심을 응원했다.


이제 나는 나이트의 불청객이 아니다. 엄연한 단골이 되었고 초보 웨이터 아저씨도 꽤 지명 손님이 늘었나 보다. 내 자리에 앉아 맥주를 홀짝일 시간이 없어 보인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흘러나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스피커 앞 내 자리로 뛰어나갔다. DJ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막춤을 춘다. 무명이 주는 자유 안에서.


사실은 혼자여도 부킹할 수 있는데...

미모가 아까운 밤이다.



사진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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