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그라미 Jul 15. 2024

남편 눈치 챙겨라.

이번엔 마늘이다.

한동안 풀을 뜯어 사람을 토끼똥 싸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마늘이다. 농사에 재주가 없는 게 분명하다. 마늘이 콩만 한 것이 까는데 천년은 걸릴 것 같다. 나는 마늘을 까지 않는다. 아니 못 깐다. 손끝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걸 알면서 저걸 가지고 온건 분명히 본인이 하겠다는 거겠지.


작업실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 차에 존경씨에게 전화가 온다.

"간장 사와"

장아찌를 만들려는 의도가 보인다. 작년에 만든 것도 냉장고에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늘밥을 지어먹는 게 빠르겠다. 나는 만능 다지기를 꺼내 마늘을 곱게 다졌다. 작게 소분해 냉동실에 차곡차곡 예쁘게 쌓아둔다. 그제야 존경씨 입가에 옅은 미소가 보인다. 제발 재능 없는  농사 그만하면 안 되겠나?


시어머니께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시다. 그 양반 유일한 낙이 밭에 나가 풀이라도 뽑는 거였다. 효자 존경씨는 어머니의 낙을 위해 자신의 주말을 반납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밭에서 무언가를 했다. 그 효심에 하늘이 감동하시어 노모께서 빨리 쾌차하시기를 철없는 며느리는 바랄 뿐이다.


콩만 한 마늘도 좋고 여름 내내 풀과 옥수수만 먹고도 불평하지 않을 테니 아들 정성 봐서라도 얼른 일어나소서.

나의 시어머니.

이전 13화 39금 나이트클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