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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l 10. 2024

달려야 하니

젊은 엄마

한 발 더 빨리 달려야 한다. 소녀는 모든 힘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렸다. 집 앞의 시궁창이 나오자 이제는 갈 곳이 없다.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만 했다.
소녀를 쫓던 추격자는 회심의 미소를 보이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네 이년, 니가 아무리 빨라 봐라. 내가 못 잡나.”
추격자의 손에는 빗자루 몽둥이가 들려져 있다.

우리 엄마는 젊어 좋은 것이 참 많았다. 하지만 나로서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도 있었다. 혼 날일이 생겨 도망이라도 치는 날이면 넘치는 에너지와 빠른 발로 내 등을 낚아채고는 여지없이 몽둥이찜질이었다. 아동학대 뭐 그런 수준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가끔은 추격전을 벌이다 둘이 눈이 마주쳐 자리에 앉아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엄마랑 나랑은 그렇게 앙숙 같은 친구 사이였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가 제일 싫었다. 생긴 건 국가대표를 해도 모자라지 않게 길쭉했던 나는 달리기만 하면 맨 꼴찌만 했다. 엄마는 그런 내가 성에 차지 않아 투덜거렸다.
“쎄빠지게 밥 먹여봐야 뭐하노. 니는 안 뛰고 걸어가나?”
“그럼 엄마가 해봐라. 얼마나 잘하는지 볼끼다.”

예전 운동회에서 학부모 달리기는 볼거리가 많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빠들의 신경전과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 다리가 풀려 넘어지는 아저씨. 뛰다 신발이 벗겨지는 할머니, 출렁이는 가슴을 탓하던 미용실 우진이 엄마.
하지만 우리 이 여사는 달랐다. 내 꼴찌가 한이라도 된 듯 ‘달려라 하니’였다.
엄마가 솔직히 자랑스러웠다. 그 솜씨를 나를 잡는 데만 쓰지 않는다면 세상 최고의 멋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 날.
그해에는 학부모와 같이하는 달리기가 있었다. 이 여사는 나를 잡고 당부했다.
“니는 뛸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힘만 빼고 있어라이. 딱 엄마 손 잘 잡고. 알긋나?”
“알았다.”
‘땅’
총소리가 울리자마자 이 여사는 나를 성난 염소 끌 듯 질질 끌고 가다 성에 차지 않으니, 팔 옆에 끼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쌀자루 같았다.
결승선에 도착하고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2등 도장을 손등에 받을 수 있었다.
나를 끌고 오느라 이 여사는 기진맥진했지만 밝게 웃어주었다.
“엄마만 믿으라고 했제.”

나에게 엄마는 늘 그런 존재다. 기죽지 않도록, 포기하지 않도록 내 마음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냥 눈 딱 감고 그만 살고 싶다가도 엄마가 끓여주는 장어탕 한 그릇이 생각나 마음을 바꾼다. 어떤 작가의 떡볶이처럼.
사실 장어탕은 핑계다. 나는 엄마의 전부라 했다.
내가 많이 아프던 어느 밤, 술 취한 이 여사가 독백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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