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이후 프랑스 시댁에서 보내는 노엘

by 마담 리에

2018년 2018년 12월 21일, 노엘 바캉스 시작


2018년 12월 21일 또 바캉스 기간이 다가왔다. 오늘은 올해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고 내년 1월 6일까지 쉰다. 2주의 휴가이다.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추석이나 설날처럼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프랑스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바캉스가 없는 한국에서라면 사치스러운 발언이겠지만, 여기 프랑스에서는 인간적으로 바캉스가 너무 많다. 1년에 유급 휴가 5주 바캉스는 부족하다며 투덜대는 남편을 보면 정말이지 욕심은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이 바캉스 기간에는 힘들다고 하는 세 번째 항암치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왕복하는 체력 고갈 없이 휴식을 취하여 체력 회복을 할 수 있는 바캉스 기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시댁이 우리집은 아니기 때문에 편한 것만은 아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댁이 불편하다.


이럴때 꼭 이런 사람 한명씩 있다. “어머나, 우리 시댁은 얼마나 좋은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서 자주 뵙고 싶고, 시어머니는 나의 친엄마 같은데…” 라면서 말이다. 불행히도 그런 시댁은 나와 거리가 멀다. 우리 시댁은 내가 프랑스어를 못하는 것에 별로 배려가 없다. 영어를 하는 사람들도 없어서 오로지 프랑스어만 구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시댁 식구들이 모여서 떠드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이야기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고 어느 부분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당최 알수가 없다.

게다가 프랑스인 시부모님은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가혹할 정도로 비판적이고 늘 부정적인 분들이어서 타인의 감정에 대체적으로 무감각하신 분들이다. 오히려 타인이 불행해지면 오히려 본인들의 행복감을 맛보는 분들이라 언어도 통하지 않은 한국인 며느리인 나에게는 어렵다. 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반응의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겁먹은 썩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인형 같다.




2018년 12월 21일, 크리스마스 식사


201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즉 1박2일 강행군 크리스마스 식사가 시작되었다.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한 후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출발 하기 전에 잔뜩 긴장이 되었다. 이틀을 시댁에서 자야 하기 때문이다. 시누이들은 저녁 시간 맞춰서 도착한다고 해서 나와 남편은 일찍 도착해서 시부모님 상 차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 집에서 가족 식사를 할 때면 언제나 며느리인 나만 시어머니를 돕고 있다. 시누이들은 언제나 늦게 나타나서 식사만 하고 사라진다. 그럼 남은 식탁 정리도 나의 몫이다. 한국에서의 명절 나기 며느리의 삶에 비하면 여기에서 음식 장만 및 상차림은 훨씬 수월하기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식사 도중에 조카가 왜 나의 머리가 모두 빠져서 대머리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이 나를 대신하여 내가 아파서 수술을 했고 머리가 지금은 모두 빠졌지만 나중에 다시 자라날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새벽 2시까지 잠도 자지 못자고 붙잡혀 있다가 막판에는 나는 서서 졸았다. 올해도 그렇게 늦게까지 시댁 식구들이 붙들고 있을까봐 우려가 되어서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어서 중간 중간 그릇 치우는 것을 내가 도맡아 했다. 밤 10시가량 되자 시어머니가 나는 이만 자러 가도 된다며 살짝 귀뜸해 주어서 절대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침대로 와서 뻗어서 잤다.


항암치료 후 이렇게까지 저질체력으로 쉽게 피곤해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나 정말 문자 그대로 피곤해서 몸을 가눌수가 없었다. 하룻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나의 에너지 보유량이 13년 전에 사용하던 핸드폰 밧데리 같았다. 사용한지 오래되어서 밧데리를 100% 충전해도 약 5분 정도의 짧은 통화 두통이면 밧데리가 바닥나서 전화기가 꺼져버리는 핸드폰이었다. 두번째 밖에 되지 않은 항암치료를 받았는데도 내 몸 상태는 금새 녹초가 되도록 피곤해졌다. 마치 아스팔트위에 녹아서 저 깊은 구석으로 쳐박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 나의 숨은 붙어 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 있는 몫을 하는 것이 나의 하루의 임무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잠자고 나서 금새 바닥을 드러내는 에너지 밧데리일지라도 사용할 수 있는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충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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