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프랑스어 et 프랑스 문화

by 마담 리에

2019년 3월 19일, 항암치료 13


2019년 3월 19일 화요일, 오늘을 제외하면 이제 항암치료도 2번 남았다. 이제까지 항암치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장 힘들었던 치료가 3번째였다. 투명한 색과 빨간색의 약물 '탁소텔' 또는 '도세탁셀' 이 몸안에 심어놓은 Port à cath를 통해 투입받고 나서 일주일을 드러누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KO를 당해서 일주일 정도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몸 상태였다. 중년 나이에 인생 2모작 하겠다며 프랑스에 발을 딛은지 2년 남짓 밖에 되지도 않아서 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 그래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인생에 아직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완패 당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까지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항상 내 몸에 있었던 머리카락, 눈썹, 코털, 이 모든 것들이 신체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잃고 나서 알게 되었다. 뱀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비늘을 벗겨내고 새로운 비늘로 덮인 껍질로 교체하는 허물벗기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이 치료과정이 내가 프랑스에서 성장하기 위한 허물벗기의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어디를 가던지 남편과 꼭 같이 외출을 했었다. 장을 보는 것도, 시댁 식구들을 만나는 것도, 남편 친구를 만나는 것도 항상 남편과 같이 갔다.


그러나 단발성 치료가 아니라 장기전 마라톤과 같은 이 치료과정을 남편이 모두 나를 동반할 수는 없었다. 본인이 나보다 더 지쳐서 스트레스 받는 모습이 보였기에 남편에게 더 큰 짐을 지워줄 수는 없었다. 이 치료과정은 나를 강제로 남편에게서 분리를 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남편에게 그만 의존하고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에 온전히 나의 힘으로 뿌리를 내리라는 운명의 가르침인 것 같았다.


오늘은 항암치료 담당 의사와 항데부가 잡혀 있는 날이었다. 의사는 그 동안 부작용은 없는지 물어보고 다음주는 방사선 치료의 일정에 대해 담당 의사와 항데부를 잡아 주고, 친절하게도 접수대에 가서 바로 접수원에게 직접 설명하고 기록해 놓게 했다.


방사선 치료는 Dr. T가 담당했다. 다음주에 방사선 치료 스케줄 및 과정에 대해 설명해 줄 예정인데 나 혼자 제대로 프랑스어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발음을 분명하게 해줘도 알아 듣기 힘든 전문 병원 프랑스어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다니면서 프랑스어 실력이 이전에 비해 현저하게 늘긴 했다. 남편 없이 나 혼자 매주마다 병원에 가서 프랑스인들과 마주쳐서 내 상황을 설명하고 질문에 응답해야 했다. 매일 시간나는대로 공부를 했다. 아니 시간이 나지 않더라도 틈을 내서 공부했다. 항암치료 받으면서 저질체력이었지만 새벽 4시에는 일어나서 공부를 하려고 했다. 혹시 언젠가 프랑스어를 듣는 귀가 뻥 뚤리지 않을까 하는 바램으로 자면서도 프랑스어를 들으면서 잤다. 유방암 치료와 함께 나의 생존 프랑스어는 늘어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 뿌리를 내리라는 운명의 계시이다.




2019년 3월 26일, 항암치료 14 : 프랑스 문화


2019년 3월 26일 화요일, 항암치료를 받는 이후 방사선치료 담당 의사와 항데부가 있는 날이다. 9시 30분에 도착해야 할 앰뷸런스가 10분 늦게 도착 했다. 말이 없는 필립이었다. 말 많아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는 앰뷸런스 기사가 싫다고 보스인 나탈리에게 말했더니 그 점을 고려해서 과묵한 사람을 나에게 배정해 주었다. 초기에 말단 직원에게 아무리 나의 의견을 제시해봐야 묵살 당했는데 보스에게 한번 말한 것만으로 내 의견이 반영되는 걸 보면 프랑스도 참으로 계급사회라는 것이 느껴진다.


의사가 방사선 치료 일정을 설명해 주었다. 치료는 총 33회, 주말 제외하고 주중 5일, 치료 시간은 하루에 1회로 10분 소요…


방사선 일정을 듣고 나니 앰뷸런스회사가 왜 나의 의견을 즉각 반영해 주었는지 수긍이 되었다. 방사선 치료 기간 6주~7주 정도 매일 나를 병원에 왕복 시켜 준다라는 건 그 회사로서 시간 대비 수익성 창출의 극대화를 달성해 줄 수 있는 기회였다. 만약 내가 그 회사의 서비스의 수준에 실망해서 다른 회사로 갈아타는 경우에 그 회사로서 수익창출의 기회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말 많아서 나를 피곤하게 하는 운전기사가 싫다는 나의 요구를 적극 반영해 준 것이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방법만 다를 뿐이지 자본화의 위력앞에서는 프랑스 회사들도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계급사회와 자본의 위력의 생각을 씁쓸하게 곱씹으면서 항암치료실로 향했다. 지난주에 이어 운좋게 개인실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용하고 편하게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방사선 치료 시간 10분, 왕복 3시간


오늘 뉴스는 주로 노란 조끼 시위, 브렉시트, 시진핑의 방문에 관한 뉴스가 주를 이루었고, 기타로는 프랑스인 중 1/4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 그러므로 하루에 최대 2잔, 매일 마시지 말라는 앵커의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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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휴게실에 갈레뜨 과자와 마들렌이 놓여 있었다. 평소에는 군것질을 하지 않지만 마들렌을 먹으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처럼 내가 잊고 있었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며 한 입 깨물어 보았지만 마들렌과 나의 어린 시절과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서인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프랑스에서 언젠가 초코파이를 발견하면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


앰뷸런스에 전화해서 14시에 항암치료가 끝나니 그때까지 병원으로 와 달라고 전화를 하고서는 점심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항상 같은 것을 주문하지만 항상 다르게 도착하는 점심의 미스테리다. 딱 맞게 도착한 적은 14번 중 한번이었던 듯 싶다. 이 정도면 틀리게 줘도 프랑스어를 어눌하게 하는 내가 responsable de qualité 에게 불만을 접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고의로 점심을 틀리게 주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은근하게 사람 차별 시키는 문화가 프랑스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그 차별 받는 대상은 제대로 내 의견을 강하게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외국인인 ‘나’이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방사선 치료를 위해 다시 한번 스캐너 검사를 받고 방사선 치료 일정을 받았다. 한 장으로 정리된 출석부 같아서 깔끔하고 유용할 듯 싶다. 항상 효율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실용주의 극치인 프랑스 회사 답다.




2019년 4월 2일, 항암치료 15 : 사고의 전환


2019년 4월 2일 화요일, 드디어 항암치료의 마지막 날이다. 평소처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간단히 커피를 마시며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5시에 일어나는 남편을 위해 밥을 준비했다. 편한 전기밥솥보다는 압력밥솥에 짓는 밥을 선호하는 남편 때문에 쌀에 불을 올려 놓고 밥이 되기를 기다리며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요즘은 코 안에 항상 코피가 고여 있었다. 의사도 항암치료 끝나면 코피가 고여있는 문제도 없어질 거라고 했다. 오늘이 마지막으로 항암치료 받는 날이니까 의사 말처럼 코피도 이제 흘리지 않을 것 같아서 처음으로 시원하게 풀었다. 두어번 시원하게 풀었더니 코 안에 있었던 뭔가가 튀어 나오면서 코피가 줄줄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항암치료로 인해 콧털도 모두 빠져서 콧물이 나자 바로 바닥에 빨간 코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항암치료인데 역시나 쉽게 넘어가 주지는 않는구나. 코를 열심히 풀지 말걸 그랬네. 라고 생각하며 코 속에 대충 바세린을 바르고 흐르는 코피에 대한 것을 의사에게 말하고 처방전을 받아야 겠다고 생각하여 오늘 의사와의 면담에서 처방전 요구를 프랑스어로 작문해본다.


“코피가 나요. 크림 처방전을 써주시겠어요? 그리고 건조한 피부에 바르는 DEXERYL 크림 처방전도 써주세요.”라고 불작하는 순간에도 붉은 코피가 주루룩 종이위에 떨어진다.


이번에는 생각을 달리 해본다. “오늘이 마지막 항암치료이고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오늘 코피를 흘리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3주 후에 있을 방사선치료 전까지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에 처방전 받을 수 없는데, 오늘 코피를 흘렸으니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 의사에게 말해서 처방전 받을 수 있겠다.” 이렇게 사고를 전환하고 나니까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고의 전환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바꾸면 그만이다.


그리고서 내가 의사에게 말할 문장들을 중얼거리며 암기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즉각적으로 외우고 싶은데 나의 머리가 나의 마음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 중년의 나이… 새로운 것을 암기는 커녕 알았던 것도 더 많이 잊어버리는 듯하다. 단어 하나를 암기하는 데에도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린다. 바위에 새긴다는 마음으로 그 문장들을 수십번 되뇌이고 암기하지만,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게 하는데는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한 듯 싶다.


오늘 앰뷸런스는 결코 차선을 양보하지 않는 마초맨인 장미쉘이 왔다. 그는 나를 병원 입구에 대충 내려주고 평소처럼 항암치료 끝나기 2시간 전에 전화 하라는 말은 잊지 않있다.


드디어 항암치료 담당 의사와의 면담이었다. 의사에게 오늘 흘린 코피에 대해 설명하고 필요한 처방전을 받았다. 의사는 오늘이 마지막 항암치료라며 오늘 받고 나면 끝이라고, 수고했다고 했다. 나는 “이 모든 건 당신 덕분입니다, 매우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항암치료 의사가 진료를 보는 데 있어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인상적인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환자와 면담 이후 환자의 상태를 녹음기를 이용해 녹음한다. 말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환자의 상태를 삽시간에 정리한다. 이 의사의 녹음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니 그가 하루에도 몇명의 환자들을 면담하고 녹음을 얼마나 반복했으면 저렇게 초고속 래퍼 속도로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속도였다.


프랑스인도 저렇게 매일 프랑스어를 반복하면서 말하기 실력이 더욱 가속화되는데 하물며 나는 수십번 반복했지만 외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없다. 그 의사처럼 매일 수십번, 수백번, 수만번 반복하면 실력향상은 저절로 수반되는 것이었다. 또 이렇게 사고의 전환을 하고 나니까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데 동기부여가 된다.


15번째로 받는 마지막 항암치료, 이제 익숙해 져서 배정받은 치료실로 들어가서 텔레비전으로 뉴스도 보고, 치료 받기 전에 화장실도 다녀온다. 화장실에는 어디서나 준비되어 있는 손 소독제가 있고, 사용법과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방을 들어가거나 나갈때, 식사 전에, 화장실 다녀온 다음에, 코피 흘린 후, 환자 방문 할 때... 등등 이렇게 하나하나 나열해서 적혀 있다.


병원에서 먹는 마지막 점심이다. 참치 샐러드 주문했는데 게맛살 샐러드가 나왔고, 바게트와 치즈 싫다고 주지 말라고 했는데 바게트를 주었다. 마지막까지 내가 주문한 점심과 다르게 나왔다. 점심의 미스테리…

항암치료 약물 준비해 왔나 보다. 앰뷸런스에 전화를 해서 3시30분에 치료가 끝날 것이라고 그 때까지 와달라고 말했다.


이제 이 모든 과정을 내 몸이 알아서 자동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처음 항암치료 받을 때는 그 모든 한 단계, 한 단계들이 힘겨웠는데 반복(Repetitions)이라는 과정은 그 힘겨움들을 스트레스 없이 자동화로 처리하게 해 주는 힘을 주었다. 드디어 항암치료가 끝이 났다.


항암치료는 나에게 많은 것을 바꾸게 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프랑스인들과 몸소 직접 부딪히며 그들의 사고방식, 행정, 문화차이들을 접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앞으로 프랑스에서의 나의 삶에 관한 사고를 바꾸게 하는 사건이었다.


IMG_6963.JPG?type=w773 마지막 항암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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