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살기 전에 배우면 좋은 것들...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2019년 7월 22일에 포스팅 한 글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저의 생각 또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정수'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감안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에서 살기 전에 배우면 좋은 것들이 있다. 아니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물론 한인들도 많이 있고, 한인들이 하는 약국, 병원, 슈퍼 들도 있는 대도시에 사는 프랑스가 아니라 적어도 프랑스 지방 자연 공원(parc naturel régional)의 남부의 깡촌 마을에서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않고 살기란 힘들다. 특히 나처럼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에 살기 위해서는 더더욱 프랑스어를 구사해야 한다.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병원에 가거나 각종 행정기관에서 일처리를 하려면 프랑스어를 해야 한다. 오히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스페인 사람들은 종종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말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참고로 나의 지인인 ‘영국인 마담’은 ‘Carte Vitale(의료보험카드)‘을 받기 위해서 3년이 걸렸다. 영국과 프랑스 보험 회사간의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 데, 그것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사람’을 찾는데 3년이 걸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마담은 ‘간질’이 있었지만 3년 동안 ‘Carte Vitale(의료보험카드)‘이 없는 채로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할 때도, 그 유명한 병원에 영어를 구사하는 의사는 없었다. 암 검사를 받을 때도 프랑스어를 듣고, 암진단을 받고 수술 과정도 프랑스어로 듣고, 수술이 진행되면서 마취로 어질어질한 순간에도 나는 프랑스어를 듣고 있었으며, 희미해지는 기억의 순간에도 나는 프랑스어를 들으며 “저들이 나에게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슈퍼를 가거나, 약국을 가거나, 쓰레기를 버리러 가거나, 축제를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할 때는 지장이 없다. 말 안통하면 안 만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랑그독’이라는 곳은 프랑스에서도 와인을 재배하는 지역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 곳에 정착해서 와인을 재배하거나 Airbnb를 하면서 사는 영국인들도 많고, 산을 좋아하는 독일인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울타리를 치고 산다. 그들의 영어권 아이들끼리 액티비티를 같이 즐기게 한다. 수업이 없는 수요일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만나서 아이들의 연령별로 그룹을 나누어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하는 영국인들도 있지만, 영어로만 생활하려 하고 프랑스어를 배우려 하지 않은 영국인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프랑스 사람들은 싫어한다. 독일인들은 그룹을 형성하기 보다는 산에 숨어서 ‘은자’로서 살기 때문에 그들의 울타리는 아직 보지 못했다.
프랑스어로 제대로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매번 반박하고 매번 설명을 해줘야 알아먹는 골루아 애네들이 짜증날 때가 많다. 길게 설명하려고만 하면 예전에는 머리 속이 하애져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더니, 요즘은 좀 프랑스어를 공부해서 그런지 하고 싶은 말이 머리 속에 생각이 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마구 뒤엉켜서 생각난다는 것이다. 문장 순서도 뒤엉켜서 주어, 동사, 목적보어, 수동태, 온갖 것이 모두 뒤엉킨다. 그리고 논리를 전개할 때도 1,2,3,4.. 라고 순서대로 말해야 하는데, 1,3,2,4.. 라고 말한다든지.. 1,3,4,... 라든지.. 그마저도 1.. 도 말도 못한다든지..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엄청 엄청나게 많아서, 한국 사람 만나면 15박 16일 동안 안쉬고 끊임없이 하루종일 떠들 수 있지만, 프랑스어로는 막상 하고 싶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냥 듣고 있기만 한 적도 부지기수다. 나도 말하고 싶다. 마음껏... 맨날 듣고만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요즘은 밖에 나가면 일단 ‘생존 불어’는 되니까 밖에 나가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거나 공포가 되지는 않는다. 작년까지는 시댁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는 프랑스어 테스트 날짜인 것 같았다. 시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할 때 몇 퍼센트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지가 늘상 나에게는 숙제였다. 지금도 숙제다. 시댁 식구들의 말하는 주제가 ‘의학 관련’ 주제들이 많아서 어렵다.
물론 나는 21세기 밀레니엄의 기념으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2001년 2월에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땄다. 그리고 나는 서울의 교통이 좋은 ‘대학로’근처에 살았다. 2분마다 다니는 지하철과 깨끗하고 편안한 버스들을 놔두고 굳이 차를 운전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운전면허증’은 언젠가는 운전할 일을 대비하여 ‘장농면허’, ‘지갑면허’로서 신분증의 역할을 했다.
프랑스에 와서 결혼하고 한국에 가서 비자를 1년짜리 받아서 다시 프랑스로 재입국했다. 그리고 체류증 신청을 바로 했건만 3개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비로서 체류증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운전면허증을 교환하기 위해서 남편에게 경찰서에 전화해서 절차에 대해서 물어보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인지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을 수가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사례가 없어서이다. 그래서 남편이 몇 일을 전화를 해대서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 화는 머리끝까지 나서 머리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상태에서야 겨우 경찰서와 통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말하기를 운전면허증 교환은 항데부 없이 그냥 경찰서 와서 기다리면 된다고 해서 남편이 직장에 말해서 겨우 반나절 시간을 빼서 경찰서에 갔다. 2시간을 경찰서에서 기다렸더니 그 직원 말이 나의 경우는 항데부를 인터넷에서 잡고 그 시간에 와야 한단다. 장난하심? 정말 슈퍼마켓 가서 총사고 싶었다.
그 뒤로 남편과 나는 운전면허증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싸우게 돼서 결국 나의 운전면허증은 교환을 하지 못하고 1년이 지나서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 이제 프랑스에서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 프랑스에서 외국인이 운전면허를 딸 때는 프랑스어가 DELF A2의 점수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프랑스어부터 시작이 된다. 어쨌거나 이제는 델프 점수가 있으니까 걱정은 안된다.
도시에 사는 것과는 다르게 시골에서는 대중교통이 너무 불편하다. 프랑스어를 배우러 도시에 나갔다가 그 곳에 간밤에 도둑이 들어서 그 곳에 노트북과 커피 머신을 훔쳐가서 아침부터 경찰이 와서 수색을 했다. 그래서 프랑스어 수업이 그 날 취소되어서 집에 강제 귀가 해야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려고 갔는데 2분 늦게 도착해서 오전 11시에 있는 버스를 놓쳤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에 있는 오후 5시의 버스를 타고 평소처럼 집에 저녁 7시에 도착했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어딘가를 가기에는 불편하다. 심지어 슈퍼마켓도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가면 왕복 1시간 20분 걸린다. 아이가 있는 집은 운전이 아주 필수일 것이다. 여기는 점심도 집에서 먹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점심 시간에 학교 앞을 지날 때면 자가용들이 학교앞에 일렬로 주차되어 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살지 않은 이상,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는 운전이 필수일 것이다.
차 운전 뿐만 아니라 자전거, 오토바이등도 운전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나마 나는 자전거를 어렸을 적에 타본 적이 있었던 덕분에, 여기 프랑스에 와서도 10km의 거리는 매일 자전거 타고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녔다.
올해는 내가 사는 곳에 사하라 사막 풍의 ‘폭염’이 와서 6월 마지막 주에 45,5도를 기록했고, 오늘과 내일 중으로 다시 폭염(canicule)이 찾아온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지중해도 멀지 않고, 산의 계곡은 굉장히 시원하기 때문에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에는 잠들기 전에 밖에 나가서 저녁에 한 번씩 수영을 하고 오면 여기가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진정한 삶의 여유랄까, 자연 가까이에 살고 있는 수혜를 최대한 누린다고 할까, 진정으로 삶의 질이 향상된다.
내가 스무 살 때, 한국에서 수영을 배우려고 시도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수영장에서 소독제 냄새가 들어간 수영장 물을 먹고 나서 수영하는 것을 접었다. 그리고 나서, 수영은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수영‘이라는 단어는 바로 ’소독물‘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에 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시댁에 가면 집에 수영장이 있어서 항상 점심 먹고 나서 수영장 안에서 수영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아버지 생일 파티에 가족 모두가 함께 바다에서 큰 배를 탄 적이 있었다. 50-6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배였다. 한참동안 주변 풍경을 보며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멈추었다. 그러더니 30분동안 수영하라고 쉬는 시간을 주었다. 배 안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바다에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시누이들도 시부모님도, 조카들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첨벙첨벙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수영 못하는 나만 카메라로 ‘찰칵찰칵‘ 하며 그 수영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수영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던데, 내가 사는 동네는 ’꼬마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영 수업만 있어서 여전히 수영을 배우는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고민중이다. 물놀이 하면서 꼬마들을 제외한 성인들은 튜브를 이용하지 않던데, 나만 튜브를 살까 진지하게 고민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살 때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번거롭게 장만하기 보다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항상 밖에서 만났기 때문에 딱히 요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에 살면서 특히 정원이 있는 시골집에 살면서 부터는 손님을 초대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혼 전에 혼자 살면서 요리에 들이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황무지 상태였다. 그러나 매일 요리를 하다보니까 같은 음식을 백번 이상 만들면 모든 각종 시행착오를 거쳐서 거의 완벽하게 눈감고도 만들 수 있는 내공에 달한다. 손님 초대할 때마다 김밥을 말았더니 지금은 김밥 마는 달인이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주변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감사표시로 가끔 선물을 해야 할 때 본인이 만든 요리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과일이 맛있기 때문에 제철 과일을 수확해서 직접 잼을 만들어서 준다거나, 티타임을 위해서 간단하게 케익이나 과자 같은 것을 만들 줄 알면 더욱 좋다.
요리라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내가 프랑스 시골 마을에 살면서, 김치까지도 만들어 먹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한인마트를 가기 위해서는 차로 2시간 가야 하고, 한국 음식을 파는 곳에 인터넷으로 종종 주문하기에는 항상 비싼 배송비가 함께 청구되기 때문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여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다른 음식들에 비해서 한국음식은 좀 더 비싸기도 하기 때문에 자주 구입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이 미치도록 그리울 때, 그 때는 꼭 김치나 라면을 먹어줘야 한다. 막상 한국에 살 때는 그다지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한국인은 한 번도 본적 없는 우리 동네... 내 한국 이름 하나 제대로 발음 못하는 인간들로 둘러 쌓인 이 곳에서... 가끔은 김치나 한국 라면을 먹으면 향수병이 조금은 달래진다.
시골에 살면서 정원이 있는 집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정원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꽃과 나무를 비롯하여, 작은 텃밭도 있고, 레몬나무, 감나무, 배나무등이 있다. 이 곳 기후가 좋아서인지, 잘 자란다. 민트도 조금 심었는데도 여기저기 마구마구 자라서 매일 샐러드에 넣어 먹어도 끝날 줄 모른다. 꽃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토마토, 샐러드, 양파, 등 야채들을 키워서 먹는 재미가 있다. 뭐 텃밭 가꾸는 이런 것은 프랑스에 와서 살면서 차츰 배워 나가도 늦지 않다. 좀 더 멋진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는 식물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배우고 갖췄으면 나는 여기 살고 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부때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 강사도 오래 했고,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회사에서 일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살지 않고... 하필 프랑스에 살고 있으며, 주변에 영어를 제대로 말하는 사람 없는 깡촌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인생은 그렇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냥 부딪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