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에 2021년 9월 15일에 포스팅 한 글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저의 생각 또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정수'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감안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운명같은 사랑, 이 사람이라고 느꼈던 운명적인 만남과 그로부터 열병처럼 앓았던 그 사랑은 한국을 떠나서 이역만리길의 프랑스에서 살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이 결정을 하는 데에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결정을 하고 나서 내가 살게 될 인생의 시간과 비교해보면 결정에 걸린 시간은 빙산의 일각이고, 사막의 모래의 한 알이었으며, 새발의 피... 조족지혈이었다. 그런 한번의 결정은 가끔은 앞으로의 인생을 아주 커다랗게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다.
숲 속을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 길은 내가 늘상 걷는 산책길이다. 매일 걷는 큰 길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춥거나 덥거나 상관없이 매일 걷는 길이기에 길에 돌맹이의 변화 조차도 알아차릴 때가 있다. 어느날 걷다가 바위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 전날 바람이 많이 불어 절벽에서 돌이 깨져서 떨어져 있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길가에 흙이 사정없이 파헤쳐져 있으면 간밤에 멧돼지가 이 곳에 다녀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게다가 내가 산책하는 이 길은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 전화 불통 지역인 une zone blanche이 있다. 그래서 그 곳을 지날 때면 사슴, 노루, 늑대, 산토끼, 멧돼지를 가끔 만났다. 특히나 바람이 나의 얼굴 맞은편에서 불어올 때는 더군다나 앞에 있는 짐승들이 나의 냄새를 맡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과 갑작스럽게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에도 산책을 나가고 싶은 이유가 생긴다.
매일 걷는 길이니만큼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겨울이 다가오면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좀 더 이른 시간에 걷는 것이 좋고 여름이면 해가 밤 9시 이후에 지기 때문에 좀 더 늦게 집에서 출발해도 된다. 게다가 무진장 날씨가 더울때도 얼만큼 가야 그늘이 나올지, 어느 곳에 그늘이 없는지… 그 모든 것이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어서 그 익숙함은 나로 하여금 어느새 그 길을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망설이지 않고 명상을 하며 걷게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정말 문득…. 늘상 보았던 그 똑같은 갈림길에서 오늘은 안가본 저 길을 가볼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때가 있다. 그 길은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거니와 심지어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산짐승들이 다니는 듯한 조그만 길로 나무나 풀들이 그 길을 무성히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그 짧은 순간의 결정으로 나는 나의 몸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길로 접어든다.
그 길은 내가 매일 다니던 생각 없이 그냥 걸어도 모든 것을 알던 그 편안한 길이 아니다. 그 길을 선택하는 순간 모든 신경 경계망을 켜고 열심히 탐험가 모드로 변신을 해야 한다. 나보다 더 큰 풀들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발 밑과 어깨를 찌르는 가시들이 무성한 나무들도 때로는 헤치고 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고, 내가 기존에 다녔던 길과 어떻게 내가 발견한 길이 서로 연관되는 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산을 가본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어떤 하나의 길을 순간적으로 선택함으로써 때로는 3시간, 4시간도 더 걸어야만 하는 곳이 있을 수 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짧은 시간동안 내린 결정은 나에게 많은 것을 바꾸게 한다.
겨울에는 한국에 비해 8시간의 과거에 살고 있고, 여름에는 7시간의 과거의 시간에 살고 있는 이곳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2016년에 결혼을 했고, 남편과 함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2017년에 한국을 갔다. 아직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아직 한국 땅을 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내렸던 프랑스인과 결혼해서 프랑스에 살기로 했던 그 결정…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한국에 계신 나의 엄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을 그 결정을 내릴 그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