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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일상과 생각의 패치조각들 23화

by 마담 리에

네이버 블로그에 2021년 9월 18일에 포스팅 한 글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저의 생각 또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정수'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감안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손재주가 넘치는 사람들…


마을을 지나다가 우연히 그 집 현관문 앞에 놓여진 돌에 그려진 그림들… 잔잔한 시골의 풍경에 여유로움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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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인의 대문 마저도 본인들이 만들어 버리는 이 내공들… 그것도 전기와 연결해서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게까지 만들어 버리는… 이 기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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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나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 남편은 테이블이 망가져서 다리가 후들거려서 슬쩍 밀기만 하면 쓰러져 버릴 듯한 이 테이블을 버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더니… 어느 날, 그것에 나무 접시를 놓고 그 위에 동글동글한 예쁜 돌을 몇 개 얹어 놓고.. 산처럼 생긴 큰 돌을 하나 얹어서 유카 옆에 놓았두었다.. 그랬더니 그 데코레이션이 “휴식의 쉼터”같은 느낌의 아주 멋드러진 장식 효과를 발휘한다. 저런 낭만적인 멋드러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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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남편은 유튜브를 열심히 보고 베란다 공사를 하는 법을 배우더니 끝내는 혼자 베란다를 만들어버렸다… 흙바닥에 시멘트를 깔고, 벽을 세우고 나무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깔고, 창문을 달고, 베란다 타일시공까지 해 버리는 남편… 내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혼자서 저렇게 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니… 말은 안하고 있지만 사실 후덜덜이다.


나도 여기에 내가 코바늘로 만든 인형인 여우로 살짝 합류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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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우리 부부는 같이 산책을 하러 나갔다. 날씨가 더워도 나무들로 가득찬 산의 그늘을 걸을 때면 전혀 덥지 않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 부부는 조용히 사뿐사뿐 걷고 있다가 옆 마을을 지나치게 되었다. 70대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마을의 물이 나오는 곳에서 물을 긷고 있는 뒷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너무 조용히 걸었는지, 우리가 가까이 있었던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다가 소스라치게 깜짝 놀랬던 그 분…


그 분이 놀라는 것을 보고 우리 부부가 더 놀랬다. 그리고 그 우연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그 분이 예전에 파리의 유명의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이야기를 계속 하다가 400 coups 의 영화 이야기로 이어져서 나는 그 영화에 대해서 이제까지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들을 그 분에게 했고, 그 분은 그런 우리 부부에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바로 옆에 있던 본인 집으로 우리를 즉석으로 초대를 하였다.


왕년에 선생님을 했던 그 분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집이 책과 사진, 그리고 그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책을 워낙 좋아한 나는 내가 한국어로 읽었던 책들도 많이 눈에 띄어서 너무 기뻤고, 또 호기심이 발동해서 읽고 싶은 책들도 구경하게 되어서 굉장히 기뻤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 분은 우리 부부와 대화가 즐거웠던지.. 본인의 서재 2군데를 모두 보여 주었고 우리의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분은 부인을 몇 년전에 먼저 보내고 그 충격으로 인해 본인도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기에 그 분의 치료가 얼마나 힘들지 공감이 갔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 부부가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을 보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책들중에 몇 권을 선뜻 빌려 주었다. 책을 다 읽으면 다시 가져다 주라며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로의 책을 교환하며 읽고 생각을 공유하는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가 책을 빌려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공유하고 싶은 책 몇권을 들고 갔고, 내가 만든 코바늘 인형인 여우를 데리고 갔다. 그 당시 어린왕자를 프랑스어 원서로 미치도록 읽고 있었던 나였기에 여우와 어린왕자의 대화를 암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인형을 주면서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하자, 이 분이 대뜸 이렇게 질문했다.


Qu’est-ce que signifie « apprivoiser » ?
길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야?



그러자 내가 자동적으로 다음과 대답했다.


Ça signifie « créer des liens... »
그건 관계를 맺는 다는 뜻이지.


그 분은 어린왕자가 했던 대사를 말했고, 나는 여우가 응답을 했던 말로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와 그 분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 분은 정말 내가 만든 인형을 굉장히 좋아했다. 본인이 그 당시에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었던 중이었고, 그 전시장에서 사진을 진열하면서 어린왕자 이야기를 했는데, 나에게서 바로 여우 인형을 선물로 받게 되어서 정말이지 너무 기쁘다고 말이다. 내가 그 분을 떠올리면서 내가 만들었던 여우를 선물로 주고 싶었던 이유는 그 분의 부인이 몇 년전에 먼저 죽고 나서 홀로 남겨진 그 분이 얼마나 힘들게 암치료를 혼자 견뎌내야 할지 마음이 너무 아파서 혼자 쓸쓸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선물을 했었다. 그리고 그 여우 인형을 너무 좋아해주는 그 분을 보니 내가 만든 인형이 드디어 참다운 주인을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선물을 주는 나 또한 굉장히 기뻤음을 말할 나위 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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