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결별...
네이버 블로그에 2022년 1월 25일에 있었던 일을 포스팅 한 글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저의 생각 또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정수'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감안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0년을 한국에 살다가 한국보다 7-8시간의 과거에 살고 있는 프랑스로 정착을 하게 되면서 바뀌게 된 건 너무 많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는 물론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인만큼 사고방식과 문화의 차이등은… 마치 이제까지 내가 배우고 익혀 왔던 모든 것을 뒤엎고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듯한 세계에 살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결혼을 하게 되면서부터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이제까지 40년동안 내가 살았고, 내가 배웠고, 내가 익혀서 익숙했던 것과 하나씩 결별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언어는 한국어 대신에 그 자리를 프랑스어가 차지하게 되었고, 그리고 익숙했던 사람들과 결별하여 이제는 한국에 사는 친구들과의 연락은 거의 전멸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내가 이제까지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 중 다소 억울하고 짜증도 났던 것 중 하나가 ‘키보드’였다.
난데 없이 그깟 키보드가 무슨 그렇게 중요하냐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에게 중요한 것은 키보드라기 보다는 내가 자신있는 ‘타이핑의 빠른 속도’가 나에게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컴퓨터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 1학년때는 모든 보고서는 손으로 써서 제출하던 시대였다. 그러던 것이 대학교 2학년때부터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타이핑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타이핑을 치고 있다.
게다가 내가 한국에서 영어 선생을 했을 때. 나는 모든 자료를 직접 타이핑을 쳐서 만들었다. 그래서 그 자료를 제대로 소화해 내면 반드시 실력향상은 물론이고 학교 성적도 올랐다. 그런 자료들을 만들기 위해서 수업 이외의 시간은 모두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대부분 할애를 했고, 주말에도 당연히 수업 자료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일에 대한 완벽을 추구했기에 항상 일도 많았고, 따라서 주말이 여유롭기 보다는 항상 책을 보거나 일을 하는 삶이었다.
자료를 많이 만들었다는 것 자체는 타이핑을 많이 쳤다는 것이고, 당연히 20년 넘게 치고 있는 타이핑의 속도는 두말할 것 없이 빨랐다. 내가 한국에서 정말 잘 했던 것, 그것도 굉장히 잘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타이핑을 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프랑스에 와서 또 상황이 다르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사용했던 키보드와 프랑스의 키보드가 살짝 다르다. 위쪽 글자 배열의 위치를 보면인 한국에서 가지고 온 노트북은 QWERTY 키보드이고, 프랑스는 AZERTY 키보드 이다. 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그래서 이제까지 키보드 자판을 안보고 타이핑을 물 흐르듯이 쳤던 나는 프랑스 키보드를 칠 때면 자꾸 한 박자씩 걸린다. 물 흐르듯이 쳤던 키보드를 이제 한글자씩 오타가 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글자는 키보드를 들여다봐야 되니까 흐름이 자꾸 끊긴다. 가장 오타를 많이 치는 것 중 하나가 m이라는 글자이다. 그리고 구두점(쉼표, 마침표, 콜론, 세미콜론, etc)과 accent이 들어가는 단어도 자꾸 타자 속도를 느리게 하는데 한 몫을 더한다.
AZERTY 키보드(프랑스 키보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바로 코로나 때문이었다. (코로나는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2021년 2월 코로나로 인해서 격리 조치가 발표되고 그 당시 다니던 국립대 어학원의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 되었다. 그래서 수업은 물론이고 시험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보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시험을 보게 되면서 프랑스어로 타이핑을 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로서 코로나로 인해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격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프랑스의 대부분의 학교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는 주먹구구식이었다.
게다가 어학원의 특성상…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외국인들었기 때문에 모두들 프랑스어를 입력할 수 있는 AZERTY 키보드 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모두 본인들의 본국에서 가지고 온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어의 글자 중에 accent 이 들어간 글자.. 예를 들어 é è ê ë 등은 입력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시험을 키보드로 쳐서 보는 것 대신에 현장 시험에서처럼 손으로 글을 쓰고 나서, 그것을 사진을 찍어서 선생님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방식으로 시험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예정보다 길게 지속이 되어서 수업은 계속 오프라인 온라인을 왔다갔다 하게 되면서 선생들은 빠르게 진화했다. 시험 문제지에 프랑스어의 특유한 accent이 있는 글자들을 시험지에 아예 ‘보기’로 제시해주고, 필요한 경우 그 글자들을 복사해서 붙이면 되는 형식으로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키보드를 의무적으로 쳐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기존에 사용하던 QWERTY 키보드를 사용해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어찌어찌 버텼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포마씨옹을 듣게 되면서 상황이 다르게 되었다. 이제 의무적으로 그것도 될 수 있는한 빠른 속도의 타이핑을 쳐야 하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포마씨옹의 목적이 무엇인가? 나의 적성과 능력을 고려해서 내가 일할 분야를 찾겠다는 진로 결정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키보드를 쳐야 하는 것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의무사항이 되었다.
그래서 AZERTY 키보드 를 샀다. 노트북 옆에 꽂아서 사용하면 되니 사용하기도 편했다. 게다가 키보드를 게이머 용으로 샀다. 그래서 타자 칠 때 불빛이 보라, 빨강, 노랑, 오렌지, 연두, 녹색, 파랑으로 색깔이 변하면서 예쁘게 빛나서 요즘은 타자칠 맛이 난다.
프랑스에 와서 편한 환경에서 어학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생존을 위해서 내가 사용해야 하는 언어를 강제로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여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 적응하는 것은 힘든 생활에 휘발유를 부었고, 내가 그토록 자신있었던 것, 평생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그 키보드 타이핑… 그것 마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작은 성냥 불씨를 살짝 얹어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글자를 틀리게 타이핑 할 때마다 마음 속에서 그렇게 반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