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좋은 스승과 제자라는 건 ?
네이버 블로그에 2022년 1월 30일에 있었던 일을 포스팅 한 글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저의 생각 또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정수'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감안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들어서 부쩍이나 스스로에게 많이 했던 질문이었다. 요즘 한국인 평균 수명이 83.5세라고 한다. 이제 인생 이모작이 아니라 삼모작, 사모작도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직업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을 돌이켜 본다면, 수많은 직업으로 일을 했을지라도 그 중에서도 나의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두 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다. 바로 ‘배움의 시간’과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즉 배움의 시간은 학생이었던 초,중,고에 이어서 학사, 석사, 그리고 박사 1년.. 이었고, 반면 가르치는 기간은 서울에서의 유학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대학생때부터 시작했던 과외를 시작으로 졸업이후 본격적으로 선생으로써 근무했던 기간이었다. 이 두가지의 활동이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가르치는 일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나는 예뻐하는 제자들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한명 있다.
그 아이는 특별한 언어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아이들과 정말 특별한 다른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실성’이었다. 그 아이의 ‘성실성’은 정말로 특별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고 나면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으로 인해 그 날 하루 정도는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시험으로 인해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고 다시 단어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굉장히 성실했다. 순수 국내파였던 그 아이가 언어에 재능이 있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성실성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가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지만 그 아이의 굉장한 성실성을 고려해보면 아이가 특목고 입시반에서 내가 한번 책임지고 지도해보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아이와 아버지의 승낙을 받고 나는 그 아이를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 아이가 맞닥뜨렸던 엄청난 과제와 공부의 양에 그 아이는 힘들어했지만, 그의 성실함과 아버지의 든든한 믿음과 지원에 힘입어 그 아이는 하나씩 헤쳐나가고 드디어 그 아이의 성실성의 재능은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 아이는 원하는 특목고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한국에서 두명만 받을 수 있다던 국가 장학금을 받고, 유명한 해외 대학으로 국비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나의 학생이었지만 나에게 인생의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다. ‘지독한 성실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이토록 성실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그 아이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한 프랑스인을 만나 결혼을 해서 프랑스에 왔다. 그리고 나는 ‘미지의 언어’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일을 했던 가르쳤던 직업에서 이제 정반대로 다시 배우는 직업이 되었다.
선생이 나의 사명(vocation)이라고 생각하고 일했던 내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그야말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수많은 프랑스인 선생님들과 한국인 강사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시간과 돈이 아까운 강사들도 많이 봤고, 반면에 압도적인 지식의 양을 소화해내며, 백과사전이 걸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진정한 스승다운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도 만났다. 특히 몽펠리에 어학원 다닐 때 이런 선생님들을 4-5분 정도 만났다는 것은 나에게 굉장한 행운이었다.
나에게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와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이다. 장 그르니에가 쓴 ‘섬(Les Îles)’의 책의 펼치면 ‘알베르 까뮈’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서문을 읽어보면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까뮈가 얼마나 끊임없이 존경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서문을 읽는 것부터 무한한 감동을 선사한다.
제자가 쓴 이런 아름다운 서문을 읽는 스승 ‘장 그르니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스승으로서 이보다 더 감동 벅찬 순간이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