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평가를 하는 것과 평가를 받는 것
네이버 블로그에 2022년 2월 5일에 포스팅 한 글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저의 생각 또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정수'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감안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제 본 것처럼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게다가 그 영화 속의 어떤 특정한 한 장면이 계속해서 머리에서 맴도는 경우가 있다. 요즘 들어서 계속 생각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그 영화는 바로 2019년 10월 29일 화요일에 봤던 프랑스 영화인 “La loi du marché”라는 영화이다. 한국에는 “아버지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상영되었다.
“La loi du marché”는 번역을 해본다면 “시장의 법칙”으로 번역을 해볼 수가 있을텐데, 한국에서는 갑자기 프랑스어의 원제와는 전혀 다른 “아버지의 초상”라는 제목으로 개봉이 되었는지 유추를 해보면 아마 “The Measure of a Man”이라는 영어 영화 제목에서 번역을 해서 “아버지의 초상”이라는 결과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 영화 원제인 프랑스어로 “La loi du marché”라는 단어를 들으면 머리에 바로 확 꽂히는 정보가 있다. 그것은 바로 marché(시장)이 바로.. 일을 하는 ‘노동 시장’을 의미하며, 이 영화는 ‘노동 시장의 법칙’에 대해 뭔가를 뭔가를 보여주는 구나... 정도를 영화 제목에서 유추를 해낼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같은 경우는 그렇다.
이 영화는구직자들과 고용주의 노동시장의 현실을 미화가 전혀 없이 잔혹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그대로 보여준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가슴마저 아파오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짤막하게 소개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티에리(뱅상 랭동, Vincent Lindon)는 중년의 나이에 구조조정을 당하고 한 순간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받으며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유는 크게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단 그의 나이는 이미 중년이다. 나이는 직업을 구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한 장애요인중 하나이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시장에서 séniors는 45세부터로 간주하고 있다.
Cependant, les cabinets de recrutement considèrent les plus de 45 ans comme des séniors.
출처 : https://lemagdusenior.ouest-france.fr/dossier-18-age-senior.html
둘째, 그가 배웠던 지식은 이미 구식이 되어 버렸다. 시대가 빠르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와 9월부터 같이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앙뚜와네뜨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야 할 때마다 이 말을 반복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타자기를 배웠어.” 그녀가 컴퓨터 키보드를 두 손가락으로 글자를 하나씩 찾아가면서 두 검지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늘상 반복하는 말이다.)
셋째, 그는 가장으로서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장애인 아들을 기숙사에 있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라도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위의 이유는 어쩌면 중년의 나이에 일자리를 구하는 상황에 있는 나와 교집합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토록 오랫동안 나의 가슴의 한구석의 폐부를 찌르는 이유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이 유독 나의 뇌리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박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가 ‘모의 인터뷰를 하고 나서 같이 직업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그의 인터뷰에 대해 평가’를 하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상황을 설명해 보자면 그는 현재 해고를 당하고 나서 구직활동을 위해 직업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 직업훈련의 한 과정에서 그는 모의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의 질문은 “상사에게 제안을 했는데, 상사가 무시한다면 어떤 대응을 하겠습니까?” 였다. 그리고 그는 그 질문에 대해 응답을 한다. 바로 이 모의 인터뷰를 하는 것을 그 직업훈련에 참가한 사람들은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 인터뷰에 대한 그의 태도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된다. 그가 없는 곳에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석한 바로 그 자리에서 평가는 진행된다. 누군가의 평가를 간접적으로 들어도 그 충격이 상당할텐데, 바로 그의 면전에 대고 가차없는 평가가 쏟아진다. 평가에 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티에리의 자세는 어땠습니까? 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둘째, 그의 사교성은 어떤가요? 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셋째, 그의 시선처리는 어땠나요? 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넷째, 그의 목소리는 어떤가요? 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이런 평가를 면전에서 듣고 나서 왠만한 강철 멘탈을 가지지 않고서야 이 상황을 어떻게 견딜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표정을 바꾸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그 평가를 냉정하게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주인공 티에리(뱅상 랭동, Vincent Lindon) 대신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 상황은 정말이지 잽을 날려서 균형을 잃게 하고, 어퍼컷을 날려서 상대방을 공중부양시킨후, 명치를 때려서 KO를 시키고, 이미 바닥에 KO 당한 사람을 뼈를 후려치는 킥을 날려서 확인사살을 한 다음, 얼굴에 침을 뱉어서 모멸감을 주는 것과 같은 심정을 나는 느꼈다.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보는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관점은, 프랑스에 조금이라도 깊이 발을 담구고 살아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여과없이 이런 말을 내뱉는 프랑스 사람들을 마주친 적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평가가 그토록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숨기고 싶은 단점을 여과없이 공개적으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일 수 있다. 누구나 단점이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단점은 부각시키지 않고 오히려 숨기고 싶은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공개 평가는 그의 단점을 그리고 너무나도 여과없이 그를 포함해서 모두들 앞에서 평가라는 것을 통해 잔인하게 공개해 버렸다.
누군가를 평가내리는 것은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가를 받는 입장은 그 여파가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 그 평가를 수용하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진심으로 발전하고 싶으면, 그 평가가 객관적이고 제대로 된 평가라면, 그 결과가 비록 뼈를 후려치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수용해서 발전의 계기로 삼으면 또 한번의 진화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