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일상과 생각의 패치조각들 31화

프랑스 시골의 또 다른 풍경

by 마담 리에

네이버 블로그에 2022년 2월 25일에 포스팅 한 글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처럼 저의 생각 또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정수'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감안해 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랑스 시골의 또 다른 풍경


프랑스 남부의 산골마을에 있는 내가 사는 동네에는 포마씨옹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큰 마을에 버스를 타고 5개월 동안 포마씨옹을 받으러 다녔다. 시골에는 대중교통이 많은 도시와는 다르다. 시골에서는 버스 시간이 정해져 있다. 아침에 다니는 그 버스를 놓치면 포마씨옹을 아침에 받는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이 다음 버스는 90분 뒤에 다니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버스를 탄다는 것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마주치며 거의 같은 풍경을 접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남부 깡촌마을에 있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언제나 같은 풍경 같지만 자연은 매일의 풍경을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힘이 있기에 매일 보는 풍경일지라도 다른 느낌을 준다. 난 이 이 자연이 선사해주는 위대함에 감사하며 이 곳에 살고 있는 것에 더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창 밖에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새들의 지저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면 파란 하늘이 눈을 황홀하게 하고, 보기만 해도 눈의 피로가 풀어지는 연녹색으로 빼곡히 차 있는 나무들, 어두워질 무렵에는 저 멀리에서부터 올빼미가 우는 소리와 함께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게 저마다 전시회를 한다.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임에 감사하는 풍경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마음의 고향…

그러나 우리 동네에서 벗어나서 12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포마씨옹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우리집에서 약 30분 정도 걸어가면 우리 동네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아침 일찍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나 학생들을 마주치는 우리 동네는 좋다. 산으로 둘러쌓인 동네라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마씨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17시는 사정이 다르다. 매일 보는 그 풍경이 미치도록 싫어지기 시작한다.

포마씨옹이 끝나고 고등학교의 교문을 열고 나서는 길…. 이미 수십명의 고등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만들어낸 자욱한 담배 연기가 스모그 현상처럼 눈 앞을 뿌옇게 가린다. 그 너구리 굴 터널을 뚫고 빠져나오면 1초라도 떨어지면 큰일날 것 처럼 껴안고 있는 강력 본드 접착보다 더 강력한 접착력을 보여주는 고등학생 커플이 벤치에 앉아 있다. 그 벤치를 지나치고 신호등을 지나서 길을 건너서 곧장 걸어간다. 이 길의 오른쪽에는 아주 높은 돌담이 있다. 그 돌담에는 가끔씩 비밀스러운 냄새가 난다. 밝혀지면 안될 것 같은 무엇인가를 숨겨놓은 듯한 냄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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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담을 지나서 내려오다보면 차들이 다니는 주요도로에 도착한다. 조금 걷다보면 로마식 다리 밑을 지나치게 된다. 그 다리 밑에는 이미 학교라는 기관과는 결별을 선언한 것으로 짐작되는 청소년들로 보이는 수십명이 거의 매일 항상 모여 있고 종종 난투극도 일어난다. 난투극이 다리 위로 번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걸어가노라면 어느새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풍경이 날 견딜수 없게 만든다. 구역질이 나기 시작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고등학생들, 중학생들. 학교가방을 메는 대신에 허리 전대 가방을 메고 유니폼인냥 하나같이 비슷한 츄리닝을 입고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는 사람들 …

그 주변으로 모두를 위협하는 듯한 귀고막이 터져나갈 듯 커다란 굉음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타며 로데오를 하는 애들, 그 모습을 선망의 눈길로 쳐다보며 자전거로 로데오를 하는 애들, 그리고 얼굴에 1센티 두께의 화장을 하고, 아침내내 손질한 듯한 쫙 뻗은 긴 머리를 한 여자아이들은 상의로 가슴 가까이까지 짧은 재킷을 입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치켜세우는 동작을 뽐내기 위한 엉덩이의 곡선을 강조하는 바지를 입는다. 라붐이 다시 오는 듯한 패션의 귀환…

그 맞은편에 있는 두 개의 벤치는 한달 정도 목욕을 하지 않은 듯한 모습에 머리는 평생 빗어본 적이 없는 듯이 엉클어져 있는 두 명이 독차지 하고 있다. 그 근처에 감히 다가갈 수 없다. 단지 미친듯이 땅바닥을 쪼아대며 공격적으로 바게트를 쪼아 먹고 있는 날기를 포기한 수많은 비둘기들뿐…

마을 전체가 홍수에 몇 년전에 잠겼던 그 마을 전체에 풍기는 썩은 냄새, 오래된 것들이 썩어가는 퀴퀴한 냄새, 그리고 그 냄새와 섞여서 나는 담배 냄새 및 담배와 섞여 나오는 풀과 약품 냄새들… 그리고 눈 풀려 있는 사람들…

버스 정류장 시간 간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강한 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린다. 머리 속에서는 제발 버스가 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내가 여기에서 유일하게 사수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은 나의 핸드폰이다. 자크가 달린 주머니가 달린 츄리닝을 입고 나는 그 주머니 안에 핸드폰을 집어 넣고 자크를 잠근다. 핸드폰이 나의 허벅지에 닿아서 핸드폰의 감촉을 느끼며 누구에게도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하지 않고 집에까지 무사히 나의 핸드폰을 가지고 하는 것이 포마씨옹을 수행하는 동안 하루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되어 버렸다. 특히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자로서 말이다.

시골의 우리 동네에 버스가 내릴때까지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된다. 집이 가까워지기 전에는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봐도 안된다. 한순간에 핸드폰이 이 나라를 떠나서 하루만 지나면 이미 다른 나라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시간이 멈춰버린 이 동네에서 원래부터 ‘발전’라는 단어는 존재해 본적도 없는 듯하다. 서울에 살 때는 본 적이 없는 믿을 수 없는 발전 정체… 프랑스에서도 문맹률이 높다는 이 곳… 하루에도 putain을 100번은 듣는 이곳… 사용하는 단어들이 이보다 저급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곳…

지쳐간다. 구역질이 난다. 이 분위기가 미치도록 싫다. 시골의 이런 모습이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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