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해외생활 초반 나는 그냥 바보가 됐다.
(자발적 이방인 chapter1을 읽고 와주세요)
그렇게 나는 대만으로 내 해외 생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당시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었기 때문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자가격리 호텔에 갔다.
지금 생각하면 딱히 떨릴 것도 없는 일인데, 공항직원을 만나고 기사님을 만나는 게 어찌나 떨리던지.
기사님이 나를 보자마자 중국어로 말을 거셨다.
하지만 중국어 실력이 부족했던 나는 알아들을 리가 없었고 기사님은 곧바로 말을 줄이셨다.
호텔로 가는 한 시간 내내 내리면서 할 만한 중국어 단어들을 생각했다.
고심 끝에 내가 내뱉은 말은 “我不要收據 워부야오쇼우쥐(영수증 필요 없어요)”였다.
하지만 나의 발음이 문제였는지, 성조의 문제였는지 그대로 영수증을 주시더라(한국에서만 중국어를 배우던 나는 이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내 중국어가 통하지 않다니).
그때부터 앞으로의 생활이 걱정되고 의기소침해졌다.
(그때 받았던 영수증)
7일의 자가격리 동안 집을 구해야 했던 나는 호텔에서 열심히 어플도 찾아보고, 방주인들에게 연락도 해봤다.
문자로 대화하는 건 괜찮았는데, 가끔 방주인들이 답답한지 전화를 걸어올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별의별 핑계를 대며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언제 언어가 늘겠냐 싶겠지만 그때는 나의 중국어 실력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루하고 걱정만 가득했던 자가격리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대만은 생각보다 더 더웠고.. 10분 거리라는 식당을 가는데 온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근데 내가 찾은 식당들이 문을 다 닫았다..?
알고 보니 대만은 아침밥과 일반식의 구분이 확실해서 내가 찾은 가게는 아침가게로 오전 11시에 문을 닫았었다.
지치고 지친 나는 결국 맥도날드에 가게 됐고, 주문을 했다. 직원이 “內用嗎?네이용마?(먹고 가요?)”라고 했는데 그 당시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한 4번 정도 다시 물어봤다.
그 순간의 직원의 짜증 나고 나를 경멸하는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로 시키고 싶은 음식보단 내가 발음하기 편한 음식을 시키거나 미리 발음을 연습하고 주문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해외생활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면 즐거운 일이 참 많지만 반대로 문득 내 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긴장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내가 한국에 산다면 언어가 안 돼서 음식을 시킬 수 있을지 고민을 할 일이 있을까?’,’또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무시를 당할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면 내 해외 생활에 대해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큰 결단을 하고 온 이 나라를 떠나고 싶지 않아 버티고 또 버텼다.
혼자였기에 내가 먼저 다가가야 친구를 만들 수 있었고, 혼자였기에 언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했고 또 혼자였기에 모든 일을 나 혼자 해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언어나 생활적인 면에서 적응이 되어 가고 커피를 자유롭게 시킬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말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비로소 나의 모습을 찾고,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 그리고 성취감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또 말이 잘 안 통하는 홍콩에 와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지만, 나는 나를 믿게 됐고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