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 이날도 어김없이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한해의 마지막 주말 저녁이라고 일찍 퇴근한 남편은 “오늘 같은 날 나오는 사람이 있겠느냐”며 나가지 말고 쉬라고 부추긴다. 내가 가고 싶다고 가고 가기 싫다고 안 가도 되는 곳이 아닌데, 책임감 없는 소리에 혀끝을 찬다.
광고 중 한 장면이다. 부스스한 얼굴로 밥 한술을 뜨며 딸이 말한다.
“하… 학교 가기 싫다.”
딸의 투정에 엄마가 대답한다.
“가야지! 네가 선생님인데?”
박카스 TV 광고 속 한 장면인데, 딱 내 심정이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와 잠깐의 휴식을 취하다 일어나기는 더 힘들다. 차라리 작업실에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덜 힘들 테지만, 돌봐야 할 어린 자녀가 있는 덕에 집에 들를 수밖에 없다. 난 또다시 일을 위해 집을 나서지만, 저녁 식사를 챙기고 나와야 하는 게 워킹맘의 현실이다.
누군가는 퇴근 준비로 바쁜 곳을 6개월째 매주 방문하고 있다. 혹자는 금요일 저녁을 술시간이라고 했다. 불타는 금요일과 비슷한 표현이다. 한주 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지인들과 만나 신나게 즐기는 시간. 게다가 연말이다.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
혼자 나와서 허탕치고 돌아갈까 봐 불안이 조금씩 싹틀 즈음, 하나 둘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늘어난다. 퇴근하자마자 캘리그라피 강의를 듣기 위해 저녁도 거른 채 강의실에 들어서는 이들. 단순히 평생학습 강좌만 듣는다면 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연말 저녁에 가방을 싸 들고 나오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글씨를 쓰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이웃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한 학기 종강을 기념해 강의를 조금 일찍 끝내고 커피숍으로 향한다. 수업 외의 사적인 대화로 친밀함의 거리를 좁혀본다. 겨울밤 눈 쌓인 골정지를 걷는다. 대충 걸치고 나온 외투에 추운 줄도 모르고 멋진 야경에 넋을 놓고 걷는다. 종강을 기념한 나들이였지만, 한주가 지나면 또 만날 우리들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 수업은 아무래도 힘들다. 활기가 넘쳤던 월요일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소진됨을 느낀다. 하루에도 똑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하는 날이면 녹음을 해서 틀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수업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나를 찾는 이들이 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함박눈에 도로가 얼어도 가고, 세찬 비가 쏟아져도 가고, 그렇게 금요일 저녁 수업을 진행한 지 벌써 사년째다.
요즘 같은 여름엔 해가 참 길다. 강의를 끝내고 주민센터를 나서는 길. 산등성이 가까이에 붙은 둥근 빛을 보며 “달이다”하고 외쳤다. 하지만 그건 달이 아니라 아직 퇴근하지 못한 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일주일간의 고된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 내게 격려라도 해 주기 위해 아직 밝게 빛나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날은 붉은 노을로, 어느 날은 구름에 가려 한 줄기 빛으로만 모습을 보일 뿐이지만 태양도 자기 할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중이었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는데, 삶의 응원을 자연에게서 받는다. 어느 때보다 싱그러운 계절의 금요일 저녁,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