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작가다

by 해오기


뭐라도 써 보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하얀 배경 위로 커서만 깜빡인다. 한 글자도 쓰지 못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집 어린이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스트레칭을 한다며 다리를 찢고, 요즘 유행하는 여자 아이돌의 춤을 춘다고 팔을 휘젓는다. 소파 왼편에서 춤을 추더니 어느 순간 주방으로 가서 레몬에이드를 만들어 먹는다.


방학으로 인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우리 집 어린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날 때, 힘을 한데 모으고 작게라도 기합을 넣어야 일어날 수 있는 나와는 달리 너무나 쉽게 몸을 움직인다. 하루 종일 뛰어놀고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피곤해서 쉬어야겠다고 말하는 일이 없다. 지치지 않는 체력이 부럽다.


물론 나도 어릴 땐 그랬다. 놀잇감을 찾기 위해 동네 산을 오르고, 여기저기 들판을 휘젓고 다녔다. 정상까지는 아니지만 1,430m의 가야산 등산에 도전하기도 했다. 당진에 처음 왔을 때 349m의 아미산을 오르고선 “경상도에선 이 정도면 동네 뒷산이야”라며 쉽게 올랐었다.


하지만 이젠 동네 뒷산이라고 얕잡아 보던 아미산을 오른 다음 날이면, 근육통에 시달려야 하는 저질 체력이 됐다. 강의를 가면 두 시간 동안 서 있는 게 힘들어서 의자를 찾고, 특강이 잡히는 날이면 체력 안배를 먼저 생각한다.


몇 해 전 아미산 표지석 도색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등산에 나선 적이 있었다. 최단 시간에 오를 수 있는 길은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 코스였다. 쉬지 않고 오르는 우리 집 어린이와 달리,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기어가듯 올랐다. 성공적으로 도색작업을 마쳤지만, 그 이후론 한 번도 정상 표지석을 만나지 못했다.


저질 체력을 이겨내기 위해 운동도 했다. 근데 문제는 30분 정도 운동에 집중한 날이면, 2시간은 누워서 쉬어 줘야 다음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몸의 특성에 맞게 이제는 격한 운동은 하지 않는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오를 수 있는 산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아미산이 힘들어 둘레길이라 할 수 있는 대덕산을 오른다. 대덕산마저 힘들 땐, 평지를 걷는다. 다만 힘들다고 무조건 쉬려고만 하지 않고 꾸준히 걷고자 한다. 섬유근육통 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 나가면 좋겠지만, 몇 년이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절망에 빠져 사는 것보다 다음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도 좋다.

평소에 거창한 목표보다는 쉽게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루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하나씩 이루어 낼 때마다 성취감도 느끼고, 다음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책을 내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한 꼭지 한 꼭지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오늘은 처음 쓴 글을 대폭 수정했고, 이 글을 완성했으니 나름의 목표를 완성한 셈이다.


여러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하면서 들은 말 중, 공통적인 의견이 있다.

“쓰는 사람이 작가다.”

아직 책 한 권 출간해 본 적 없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니 이미 난 작가라고 감히 이야기한다.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축구는 많이 뛴 팀이 이기고, 글은 많이 쓰는 사람이 잘 쓴다고 한다. 높은 산은 체력적 한계로 인해 포기했지만, 손가락 움직일 힘만 있다면 글은 쓸 수 있으니 꾸준히 쓸 수 있기를 꿈꾼다. 글을 쓰며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만날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