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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Jan 25. 2020

부석사 괘불지주와 괘불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돌덩이에 주목해보자

범종루를 보고 난 후 바로 안양루로 올라가도 된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약수물을 한잔 마시면서 숨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힘들었으니 잠깐이나마 근처를 돌아보면서 쉬자는 것이다. 안양루로 올라가려면 또다시 무시무시한 돌계단의 파노라마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약수물이 떨어지는 수조는 만든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이는데 연꽃 모양의 것에 일차로 물이 고이고 그렇게 고인물이 우측의 네모난 것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 이유 없이 수조를 두 개씩이나 만들지는 않았을 거 같지만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물을 한잔 마시고 양 옆을 보면 어떤 건물들이 눈에 띄는데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스님들이 생활하시는 공간인 것 같다. 주변에 나무도 심어서 울타리까지 쳐놓았다.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는 들어가지 말자. 좌측을 보니 손상을 입은 석등의 유구가 눈에 띈다. 성보박물관도 있는데 굳이 저곳에 둬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저리 방치해두면 비바람에 풍화가 더 심해질텐데.

응향각이다. 부석사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계단 바로 우측에 있었다고 한다. 통로와 인접해서 왕래가 불편하기에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선열당이라고 하는 건물이다.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이고 있다. 망가진 석등 하나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전 글에서 범종루를 설명할 때 언급했지만 범종루와 안양루 축대 사이의 이 공간은 상당히 넓다(사진2). 괘불지주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곳에 괘불을 걸어놓고 법회나 수륙재 같은 행사도 진행했을 것이다(사진2-1).  

사진 2. 범종루 뒷공간은 상당히 넓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의식 같은 것을 치르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 무량수전 영역은 좁은 데다 가운데 석등까지 있어서 불편하다.
사진2-1. 괘불지주의 모습. 원래 한쌍이 있어야 정상인데 하나만 남아있다.


사찰에 괘불이 있다는 이야기는 그 사찰에 신도들이 꽤나 많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괘불의 주된 용도가 야외에서 행사를 하거나 법회를 할 때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야단법석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야외에 단을 마련해서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의미이다. 야외에 사람이 많아서 소란스럽고 북적북적거리다 보니 지금처럼 뭔가 어수선하고 정신 사나운 분위기를 가리키는 뜻으로 변했다. 이렇게 괘불을 쓰는 상황이 오면 넘쳐나는 신도들 탓에 자연스레 야단법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작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크기부터 압도적이라 바탕이 되는 천도 많이 있어야 하고 안료도 많이 필요하다. 화승도 여럿 초빙해야 한다. 승려니까 급여는 지급 안 하더라도 일하는 동안 밥은 먹이고 재워야 한다. 대규모 시주가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야외에서 행사를 할 때 괘불을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법당 안에는 불상이 있으나 바깥에는 불상이 없으므로 (신자 입장에서는)부처님이 계신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이 항상 주위에 있으면서 보살펴준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괘불을 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괘불은 모두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들이다. 흔히 조선시대를 숭유억불의 시대라고 해서 불교가 마냥 침체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오히려 불교미술이 번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물론 주된 시주층이 일반 백성이라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던 고려시대에 비한다면 그 수준은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고려 불교미술과는 다른 조선 불교미술의 매력이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부석사의 괘불지주는 손상되었으니 잠시 다른 사찰의 괘불지주를 보도록 하겠다. 괘불지주에 이런 식으로 괘불대를 설치한 뒤 괘불을 건다. 부석사 초입에 보았던 당간지주와 유사하게 활용된다고 알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사진 2-2, 2-3 참조)

사진 2-2. 괘불지주에 괘불대를 설치한 모습
사진 2-3. 최근에 새로 조성된 보광사 괘불이 걸린 모습. 크기가 커서 다루기 쉽지 않은 탓에 장정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한다.



부석사에서는 조선시대 두 차례 괘불이 조성되었다(사진2-4, 2-5). 1684년과 1745년이다. 원래 1684년에 괘불을 그려서 쓰다가 이것이 손상되어 새로 괘불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1684년 작은 수리하여 청풍(제천) 신륵사로 보냈다고 한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45년 작은 현재 부석사 성보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석사를 방문했을 때 성보박물관이 내부 수리중이라 1745년 작을 보지 못한게 너무나 아쉽다. 괘불에 대한 도상적 설명도 하면 좋겠으나 내 수준에서는 아직 벅차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도록 한다. 다음 글에서는 안양루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다. 

사진 2-4. 1684년 작 부석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 2-5. 부석사 괘불(1745년). 영주 부석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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