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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Mar 19. 2020

부석사 조사당 내부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천왕상 벽화와 의상대사 소상

조사당의 내부로 한번 들어가 보자구요.

조사당 내부에 들어가면 무엇이 있을까? 내부에 들어가면 이렇게 생긴 승려의 상이 하나 보인다. 바로 의상대사의 소상이다(사진8-1). 소상이란 흙으로 빚어 만든 조각을 의미한다. 일설에는 석고상이라고 하나 흙으로 만든 소상이다. 안타깝게도 이 조각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어느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인지도 알 수 없다. 내가 평소 자주 인용하는 김태형 학예사의 책 '다시 읽는 부석사'에는 이 상이 적어도 조사당이 중수된 1377년에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상당히 오래되었고 미술사적으로 가치있는 작품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다 할 연구가 없는지 의문이다.

8-1. 의상대사 소상. 조사당의 주인공 되시겠다.



소상 외에도 조사당 내부에는 꽤 많은 불화들이 봉안 되어 있다(사진8-2). 얼핏 보니까 현대적인 분위기가 나길래 가까이가서 살펴보았다. 하단부에 화기가 있는데 한글과 한문이 섞여 있다. 대충 읽어보니 1970년대에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서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 초상화도 한 점 있는데 과거의 선묘각에 모셨던 선묘 초상이다. 지금 선묘각에 모셔진 용타고 있는 초상화 보다는 이 작품이 훨씬 더 선묘 같은 느낌이난다.


원래는 이곳에 이름난 고승들의 진영(스님의 초상화)이 여러점 모셔져 있었는데 상당수가 도난당했다고 한다. 문화재의 가치를 잘 모르던 시절에 관리 소홀로 벌어진 일이라서 안타깝기 그지 없다.  

8-2. 조사당 내부에 모셔전 여러 불화들. 스님들의 진영도 보이고 선묘 초상, 위태천을 중심으로 하는 신중도도 보인다.


이것 말고도 조사당 내부에는 벽화가 남아 있었다. 현재 벽화들은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서 보존되고 있는 상황인데 고려시대 작품이라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사진8-3). 조사당이 중수될 당시 같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불교 벽화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국보 46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탓에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2026년까지 보존처리 작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8-3. 성보박물관 내에 보관된 조사당 벽화의 모습. (사진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부석사를 답사차 방문했을때는 성보박물관이 내부 수리중이라 이 벽화들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이렇게 사진만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기에 안타깝기 그지없다(사진8-4). 이 벽화들은 사천왕과 범천, 제석천을 그린 것이다. 


이들은 원래 고대 인도의 토착 종교에서 모시던 신들이었으나 불교에서 이를 흡수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사천왕은 붓다가 계신 수미산의 중턱에 위치한 사왕천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남북 한 방향씩을 맡아서 책임지고 있다. 휘하에 수많은 권속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무장을 하고 악귀를 발 아래에 깔고 있는 다소 무서운 모습으로 표현된다.  


8-4. 사천왕과 범천, 제석천을 각각 따로 찍은 사진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지물과 손모양 파악이 어렵다.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범천과 제석천은 여래를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사천왕과 달리 문관의 모습을 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생김새가 보살과 비슷하여 혼동할 여지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범천은 인도 바라문교의 창조신인 브라만을 불교에서 흡수하여 부처를 보좌하는 존재로 삼은 것이다. 


제석천 역시 바라문교의 인드라라고 하는 신이었다. 번개, 인드라망 등을 무기로 쓰는 강력한 존재이고, 사왕천 위에 있는 하늘인 도리천에 머무르고 있다. 도리천은 다른 말로 33천이라 불리는데, 제석천을 포함하여 33분의 천신이 계시기 때문이다. 제석천은 그러한 천신들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번개가 주된 무기라 금강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 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사당 벽화에서는 합장을 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원래 사천왕과 범천, 제석천은 불화에서 부처를 수호하거나 옆에서 모시는 그런 존재로 그려지는데 의상스님을 모신 조사당에 그려진 것이 놀랍다. 이는 후에 들어온 선종의 영향으로 보인다. 선종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경전을 공부하는 것보다 내적인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도록 이끌어 주는 존재인 스승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런 탓에 앞서 깨달음을 얻은 고승에 대한 예우가 남다르다. 부석사에서 의상대사의 존재가 어떠했는가를 이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자, 이제 조사당을 살펴 보았으니 부석사에서 중요한 장소는 거의 다 돌아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진전과 자인당, 단하각, 삼성각 정도가 남았는데, 다음 글에서 간단하게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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