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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Jun 30. 2020

황제를 닮은 불상

북위 시대의 불상

탁발선비족이 세운 북위(386~534)의 3대황제 태무제는 혼란 일색이던 북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그리하여 화북의 북위와 강남의 송이 대립하는 남북조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런데 그는 돌연히 폐불을 단행하게 된다. 사찰의 승려들은 강제로 죽임을 당하거나 살기위해 환속하였고, 수많은 사찰과 불상들이 파괴되었다. 불교의 승려들이 부처만 알지 황제를 우습게보고 예를 갖추지 않는다는 것이 명분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도교와 유교세력의 견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태무제가 죽고 그 손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이가 바로 문성제이다. 불교에 호의적이었던 그는 즉위하자 복불을 선언하게 된다. 한편 불교계도 폐불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그들이 짜낸 묘안은 황제가 곧 부처라는 사상, 황즉불 사상이었다. 부처를 현세의 황제와 동일시 함으로써 황제가 지속적으로 불교를 후원하고 보호하게 되었으며, 황제 역시 부처가 가지는 권위를 누리게 됨으로써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이후의 불교는 단순한 종교로써 뿐만 아니라 정치사상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듯 당시의 담요라는 승려는 문성제에게 수도인 평성(대동시) 서쪽의 무주산에 도무제로부터 문성제까지 다섯 황제를 부처의 모습으로 조영하자는 건의를 하게 되었고, 이에 운강석굴이 개착되게 된다(사진1). 운강석굴은 총 53개의 굴로 이루어졌는데, 5세기 중엽부터 6세기까지 단기간 동안 조영이 이루어졌다. 

사진1. 운강석굴 제 20굴 주존불, 황제의 위엄을 표현한 듯 거대하고 힘이 넘쳐보이는 인상을 준다. 처음부터 이렇게 외부에 노출된것은 아니고 굴내부에 있던 것이다.


담요가 황제의 모습으로 조성한 굴은 16굴부터 20굴까지이다. 이 5개의 굴은 특별히 담요 5굴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여기에 조각된 다섯 부처는 각각 석가, 아미타, 미륵, 노사나, 정광불인데 각각의 부처가 어느 황제와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운강석굴은 비슷한 시기의 불교 조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담요 5굴 중 하나인 20굴 불좌상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이 상의 영향을 천안 원년명(466) 불좌상과 태화 원년명(477) 금동불좌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사진2).

사진2. (좌)천안 원년명 불좌상 (우)태화 원년명 불좌상, 우측의 불좌상은 이전보다 상반신이 다소 길어졌다



한편 후대의 임금인 효문제(재위 471~499)는 한족의 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여 낙양으로 천도하고, 복제부터 관제, 언어, 성씨, 본적 등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는 철저한 한화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이에 따라 불교조각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핵심은 '포의박대식' 복제와 '상현좌'의 출현, '수골청상'의 외모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포의박대식 복제란 한족 사대부들이 입었던 옷차림을 일컫는 말로, 넓은 소매와 폭이 넓은 띠를 맨 옷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쌍령하수식이라고도 한다. 좌상의 경우 치마와 대의자락이 흘러내리며 대좌를 덮어 계단식의 과장된 옷자락이 표현되는데 이를 상현좌라고 한다. 수골청상이란 외관상 어깨가 좁고 다소 야윈 모습이지만 정신은 맑아보이는 상태를 뜻한다.


낙양으로 천도한 북위는 낙양의 서남쪽에 있는 용문산에 또 다른 석굴을 개착하게 되는데, 바로 용문석굴이다. 용문석굴에서 발견된 북위시대 불상들은 수골청상의 모습에 포의박대식 의상착의를 하고 있어 한화된 불상양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6세기초에 건설된 빈양중동의 불상 양식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금동불과 석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빈양중동의 영향에 의해 성립된 양식은 정광 연간(520~524)에 대체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정광양식이라고 부른다. 이 양식의 불상은 불신이 가늘고 길지만 눈과 코가 오똑하고 예리하며 전체적으로 편평해서 육감적인 느낌이 많이 감소되었다. 철저한 정면관에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옷자락이 두껍고 주름은 번잡하게 표현되었다.(사진3) 

사진3. 용문석굴 빈양중동 주존불, 북위 523년


프랑스의 기메 동양미술관에 소장된 신구 원년(518)명 금동이불병좌상은 이 양식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다. 옷이 두꺼워 신체의 굴곡을 파악할 수 없으며 가늘고 긴 느낌이다. 전형적인 수골청상의 모습에 포의박대식으로 법의를 착용하고 있다. 또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정광 5년(524)명 금동미륵불입상도 정광양식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생각날 정도로 양식적으로 비슷하다.(사진4)


사진4. (좌)신구 원년명 금동이불병좌상, (우) 정광 5년명 금동여래입상, 둘다 두꺼운 포복형태의 가사자락을 입고 있으며 왼쪽팔에는 남는 가사자락의 일부를 걸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수나라, 당나라 초기의 불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ps : 공부하면서 쓴 것이라 잘못 기술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지적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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