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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Jul 14. 2020

김홍도가 그린 씨름

"으쌰~!"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넘어가겠어, 힘을 내라고!"

'나는 씨름보다 엿이 더 좋은데..... 아버지한테 사달라고 졸라볼까?'

'저 선수의 약점은 뭐지? 어떻게 해야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구경꾼들이 많은걸 보니 오늘 경기는 꽤나 흥미진진한가보네. 엿도 많이 팔리겠지'?




섬세한 필치를 쓴 것도 아니고, 당대에 유행했던 최고의 기법이 쓰인 것도 아니지만 이 그림은 서민의 풍속을 소재로 한 까닭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매우 쉽다. 동서양을 대표할만한 유명한 대작들처럼 보자마자 마음을 확 잡아끄는 강렬함은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 보는 재미도 있으면서 여러번 봐도 쉽사리 질리지 않는 그런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그렇지만 약간의 설명을 곁들인다면 좀 더 풍성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자라는 지식이나마 여기에 풀어놓아 보려한다.

그림0. 단원풍속도첩을 구성하는 하나인 씨름

해당 작품은 중앙에 씨름 경기중인 두 선수를 관중들이 에워싸고 구경하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작품의 구도 같은 것은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먼저 시합 중인 선수들을 살펴보자. 


편의상 두 선수 중 한쪽 발이 들린 선수를 A라하고, 다른 선수를 B라고 부르겠다. A선수의 미간을 찌푸린 모습과 B선수의 굳게 다문 입을 보면 경기가 굉장히 격렬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두 선수를 유심히 보면 입고 있는 복장에서 신분의 차이가 느껴진다. A선수는 B선수에 비해 소매가 긴 옷을 입고 있으며, 종아리에도 무언가를 차고 있는게 보인다. 이는 행전이라고 하는 것인데, 바지의 통을 줄여주어 거동시 움직임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3시방향에 벗어 놓은 신발에서도 두 사람의 신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하나는 다소 가지런히 놓인 발막신이며 다른 하나는 평범한 짚신이다. 발막신은 아마도 가죽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씨름은 누가 이길까? 단원은 이 경기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암시하는 장치를 곳곳에 숨겨 놓았다. 우선 A선수의 손을 자세히보자. 왼손은 허리를 잘 붙들고 있지만 오른손은 손가락이 유난히 길게 그려져 있다. 화가가 솜씨가 부족해서 저렇게 비정상적으로 그렸을까? 이는 손이 미끄러져서 놓쳤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A의 왼쪽 다리가 들린 것으로 봐서 B가 9시 방향으로 넘기려고 기술을 쓰는 중이며, A는 남은 한쪽 다리로 힘겹게 버티는 중이다. B는 기회를 엿보다가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 이를 역이용하여 반대방향으로 기술을 써서 넘어뜨릴 것이다. 그림의 3시방향에 청중이 없는 것과 4시 방향의 두 사내가 입을 벌리고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도 그쪽으로 A가 넘어질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것이다.  


씨름 선수들은 요즘 선수들과 다르게 허리샅바를 매고 있지 않은데, 이는 한양과 경기지역에서 성행했던 바씨름이라고 한다. 바씨름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샅바를 상대의 왼쪽 허벅지에 매고 그 나머지를 나의 오른손에 둘둘 말아서 잡고 하는 씨름이라고 한다. 허리샅바는 잡지 않는다고 하며, 왕십리, 뚝섬, 광나루 등지에서 실시되었다고 쓰여있다. 그림을 자세히보면 선수의 왼쪽 허벅지에 샅바가 매여 있는게 보인다.(사진1 참조)

사진1. 왼쪽 허벅지에 샅바가 매어져 있다.


이제 구경나온 사람들을 살펴볼 차례다. 자세히보면 대체로 양반은 왼편에 앉아있고, 오른편에는 평민들이 앉아서 구경하고 있다. 양반과 상놈들이 한데 어울려 씨름을 했다는 것과 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은 당시 무너지고 있던 조선사회의 신분질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10시 방향을 자세히보면 한사람이 두손을 깍지낀채 다리를 모으고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씨름을 바라보고 있다. 옆에는 갓을 벗어서 포개놓은 것으로 보아 양반임이 확실하다. 그 뒤에 있는 사람은 형제인듯 매우 닮았는데, 역시 표정으로 보아하니 그 역시 선수로 뛸 예정인것 같다. 9시방향에 갓을 벗어 땅에 놓고 있는 사람의 밝은 표정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대조가 된다. 

 

그 옆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남자가 있는데 그 역시 양반차림새를 하고 있다. 부채로 얼굴은 왜 가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양반인데 천한 서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이런 씨름판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씨름 선수들이 일으키는 흙먼지를 막으려고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씨름판이 오래되어 다리가 저린듯 한쪽 다리를 펴고 있다. 미술사학자 故 오주석 선생은 한 강연에서 이 사람을 가리켜 별로 되먹지 못한 사람 같으니 사위로 삼지 말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뒤에는 의관을 정제하고 반듯하게 앉아서 관람을 하시는 어르신이 계셔서 비교가 된다.


그 옆으로는 자세가 비교적 자유분방하고 옷차림이 가벼운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상민들의 모습이다. 상투를 튼 사람은 장가를 간 성인이라는 의미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데 어울려서 즐겁게 관람을 하는 모습에서 세대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요즘은 사회변화가 너무 빨라서 10년 차이만 나도 관심사와 공감대가 달라 소통이 쉽지 않다. 세대간의 공감이 이루어지는 건 기껏해야 월드컵 정도가 아닐까?


오른쪽 상단에 묘사된 사람들 중에는 옆으로 팔베게를 하고 누운 남자가 한명 있다. 역시 씨름이 한참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앞에는 이 남자가 벗어놓은 털패랭이가 놓여있다. 이것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썼다는 모자의 일종이다.(사진2)

사진2.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썼던 털패랭이와 팔베게를 하고 누워서 관전하는 남자


아래쪽으로는 4시방향의 두남자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점잖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모두 양반으로 보인다. 6시쪽에 앉아있는 어린아이는 경기보다는 엿에 더 관심이 많은지 엿장수만 연신 바라보고 있다. 부채를 들고 있는 남자들이 많은데, 이로 보아 단오 무렵임을 알 수 있다. 단오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에도 더위를 쫓아가며 열심히 일해달라는 의미라고 한다.(더우면 쉬게 해야지 도대체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사진3)

사진3. 엿자수만 오매불망 쳐다보는 아이와 점잖게 부채를 들고 계시는 어른들


씨름의 구도를 보면 중앙의 씨름 선수를 중심으로 원형의 구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경은 생략한채 원형의 구도를 취함으로 인하여 감상자가 씨름에 집중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아래쪽보다 위쪽의 관중이 더 많은데, 이렇게 그린 이유는 씨름판의 생생한 분위기를 더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함이다. 아래쪽에 더 많은 사람들을 그렸다면 표정을 드러내기 어려우므로 현장의 열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평민들을 상단에 더 많이 그린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아무래도 굳은 자세와 표정의 사대부들 보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그들이 경기의 흥미진진함을 드러내기에 더 좋았을테니까.


반면에 엿장수는 나홀로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구도가 너무 중앙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는 하나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중앙으로 시선이 전부 몰리면 감상자가 일종의 답답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일종의 숨구멍을 터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3시 방향에 신발만 그려져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사진4)

사진4. 작품의 원형 구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면, 4시방향에 상투를 튼 남자의 손을 자세히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왼팔에 오른손이 달려있고, 오른팔에 왼손이 달려있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된다. 故 오주석 선생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는 일종의 숨은그림찾기라고 한다.(사진5) 

사진5. 이 남자의 손 모양을 자세히 보세요.

이 그림은 서민들 취향에 맞춰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이렇게 재미있는 요소를 하나 끼워넣은 것이라는 것이다. 김홍도가 그린 단원 풍속도 첩을 보면 이렇게 손이나 발의 방향이 뒤바뀌어 있는 그림이 상당히 많다. 작품의 소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점과 값싼 장지에 그려진 점, 배경이 없고 선 위주로 그려진 간단한 필법, 먹 외에 이렇다할 채색이 들어가 있지 않은 점, 씨름의 승자가 평민이라는 점 등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요즘에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아무래도 경쟁이 심해지면서 단순한 성능이나 기량만 가지고는 우위를 차지할 수 없으니 그런 말이 나온거 같다. 좋은 스토리가 있다면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마음이 열린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게된다.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을 설명하는데도 이러한 원리를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문화유산에 걸맞는 스토리가 있다면 사람들이 해외의 모나리자 같은 미술작품처럼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이고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처우나 제도도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이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가 담긴 문화유산은 생명력을 가진다는 점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PS : 

1. 해당 회화의 해석은 故 오주석 선생의 저서인 "한국의 미 특강"에 기반하였습니다. 

2. 해당 글에 실린 사진은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제공하는 도판을 사용하였습니다.

3. 유튜브에 해당 작품을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어 올려두었으니 필요하시면 참고바랍니다. 내용은 이 글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https://youtu.be/VQa5tOGuT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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